[지지대] 리셋증후군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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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스필버그가 2017년 제작한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Ready Player One)’은 가상세계를 다뤘다. 이 영화에서 그린 인류의 미래는 환경오염으로 식량이 고갈되고, 넘쳐나는 쓰레기로 살 공간도 부족한 디스토피아 그 자체다. 사람들은 암울한 현실을 피해 ‘오아시스’라 불리는 가상현실을 찾는다. 오아시스에서는 누구든 원하는 캐릭터로 어디든지 갈 수 있고, 뭐든지 할 수 있고, 상상하는 모든 게 가능하다. 이곳에선 현실 속에서 느끼지 못하는 행복감을 느낀다.

영화 속엔 현실이 만족스럽지 못해 가상세계에서만 지내는 인물이 등장한다. 사는 게 힘들어 불만과 불안이 팽배한 현실을 도피하려는 현대인들의 일면을 닮았다. 실제 많은 청소년들이 인터넷게임에 빠져 살면서 현실과 가상현실을 혼동한다. 이로 인한 증상이 ‘리셋증후군(Reset syndrome)’이다.

게임, 통신, 음란물 등에 중독된 성인들 사이에서 문제가 된 리셋증후군이 청소년들에게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리셋증후군은 컴퓨터가 원활히 돌아가지 않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리셋 버튼만 누르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처럼, 현실 세계에서도 리셋이 가능하다고 착각하는 현상이다. 게임처럼 인생도 되돌릴 수 있다는 망상을 갖고 있다. 이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현실과 가상세계를 구분하지 못하면서 싫어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인간관계를 쉽게 정리하고 처음부터 시작하려 한다거나, 조금만 어려움이 있어도 이를 회피하고 다시 하려 한다. 또 마음에 들지 않은 일이 발생했을 때 폭력적으로 변해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리셋증후군을 인터넷중독으로 정의했다. 판단력이 미숙한 유년 시절부터 각종 디지털 매체와 가상현실 게임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아 리셋증후군을 보이는 연령이 낮아지는 추세다. 통계청의 ‘한국의 사회동향 2017’ 자료에 따르면, 초등학생 고학년의 91.1%, 중학생의 82.5%, 고등학생의 64.2%가 게임을 하고 있으며, 전체의 2.5%가 게임중독 상태로 위험군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실제로 가상과 현실을 구분 못하는 청소년들에 의한 사고가 여러건 발생했다.

리셋증후군은 자존감이 낮은 청소년에게서 주로 나타난다고 한다. 이는 스스로 조절하기 어려워 주변의 도움과 인지행동치료 및 교육을 통해 현실과 가상현실을 구분하게 해야 한다. 강제로 게임을 중지시키면 돌발행동을 할 수 있으므로 부모와 자녀가 대화와 합의를 통해 게임시간을 줄여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리셋(reset)’이 아닌 ‘리필(refill)’을 통해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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