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초 서울이나 외지에 사는 친척에게 전화를 하려면 우체국에 가야 가능하였다.하루4번 오가는 버스를 타거나 그냥6km를 걸어가 우체국 교환식 전화기를 이용했다.
그런데 아랫동네 이장님 사랑채 사무실에 교환전화기가 설치되었다.아랫마을+윗마을에1대의 전화기 쿠폰이 나왔다고 들었다.이장님 집은 이제 행정의 현장이고 통신의 중심지가 되었다.
출향인사가 친척에게 전화를 하려면 우선 이장님을 통해야 한다.전화를 받으신 이장님은 동네 확성기를 통해 알려준다. “아무개는 서울의 형으로부터 전화가 왔으니 이장 집으로 오기 바랍니다.”방송을 들은 동생은 곧바로 이장님 댁으로 달려가고 잠시 기다리면 서울 사는 형과 통화를 합니다.경우에 따라서는 이장님은 대변인이 되기도 한다. “아무개야!서울 형이 이번 주 일요일에 벌초를 하자고 한다.”방송을 들은 동생은 더 이상 형에게 전화하지 않는다.일요일에 벌초를 가면 되는 일이다.
어느 날 이장님이 바뀌었다.모든 서류와 비품은 인계되었지만 전화기는 넘겨줄 수가 없었다.설치 당시에는 이장님 앞으로 나온 전화였지만 실제로는 개인 소유이기 때문이다.그래서 전 이장님댁에 방송시설은 그대로 두고 새로 되신 이장님 집에 방송장비를 추가 설치했다.
지금까지는 각 가정의 대소사가 전화를 매체로 하여 스피커 방송을 타는 관계로 온 동네 사람들이 알게 되었는데,전(前)이장님과 신(新)이장님댁에 설치된 두 개의 마이크가 운영되면서 면사무소와 이장님의 행정도 투명해지기 시작했다.우리 이장님이 면사무소에 가시는 일정이 동네 마이크를 통해 자연스럽게 모두에게 알려지게 되었던 것이다.
내일 오전 이장님 회의가 있다는 면사무소 전화를 받은 전이장님은 마이크를 잡고“이장님께 알립니다. (대부분2회 반복함)내일 오전10시에 면사무소에서 이장님 회의가 있다고 합니다”신 이장이 답변방송(答辯放送)을 한다. “네 이장님!(전임 이장님에 대한 예우)잘 알았습니다”현대판‘느린SNS’인 것이다.
이제는 집집마다 일반전화가 있음은 물론 개인전화기가 가족 수만큼 보급되어서 아침이면 본인 전화기 찾는 일로 바쁘다고 한다.집 전화를 반납하고4인5개(1인2대도 있음)핸드폰 시대가 열렸다.정말로 편리한 개인전화기의 고마움을 알고 공중전화 박스에서 개인전화를 쓰는 서글픈 모습은 없어야 하겠다.
이강석 전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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