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1급 요리사가 되려면

우리나라 최고의 셰프(요리사ㆍ주방장)로 알려진 A씨가 TV에 나와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제가 최고의 셰프가 된 비결은 다른 것이 아니라 손님이 남긴 식탁의 음식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어떤 음식은 손님이 잘 드셨는데 어떤 것은 그대로 있거나 많이 남기셨습니다. 그러면 저는 왜 이 음식을 남겼을까. 레시피(재료)가 나쁜 것이었을까? 덜 익혔거나 향료를 너무 약하게 한 것일까? 하고 나의 요리 방법을 되돌아보는 것이죠.”

1980년대 우리나라에 들어 온 미국의 월마트, 프랑스의 까르프는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글로벌 백화점이다.

월마트는 1987년까지만 해도 연간 140억 원의 수익을 올렸고 전국에 16개의 매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월마트는 점점 하강곡선을 그리기 시작하더니 2004년에는 거꾸로 36억 원 손실을 입는 등 점차 경영난을 겪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까르프도 마찬 가지였다.

마침내 이들 두 거인들은 중국에 집중하겠다는 명분으로 매장을 정리하고 한국을 떠났다. 월마트와 까르프가 진출한 나라에서 재미를 못 보고 철수한 경우는 한국뿐이다.

그러니 세계적 관심사가 됐고 파이낸셜 타임즈를 비롯한 여러 언론들은 한국 재벌 기업을 탓하기도 했지만 이들이 한국 소비자의 정서에 융합하지 못했음을 지적하는 언론도 있었다. 물론 한국인들의 소비문화가 독특하고 까다롭다는 이야기도 나올 수 있었다.

그래서 어떤 언론은 한국내의 부적응과 경영실패는 한국인의 취향과 정서를 정밀분석하지 못한 데서 비롯 됐다고 지적하는가 하면 창고형 매장 운영 스타일을 고집하지 말고 한국 소비자 정서에 맞추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매장의 조명을 한국인들의 취향에 맞추고 프랑스에서 온 직원이 배장을 관리하지 말라고 했다.

반대로 내가 잘 가는 어떤 중국식당은 바로 이와 같은 한국인의 취향을 살려 영업을 잘하고 있다. 중국 음식의 정체성을 살리면서도 한국인들의 입맛에 맞춰 깍두기를 내놓은 것이다. 기름진 중국 음식을 먹다 새콤하고 칼칼한 깍두기를 입에 넣어 아삭아삭 씹는 맛에 손님들은 이집을 자주 찾는 것이다.

원래 중국 음식이 세계 어느 곳이든 성공하는 이유도 이처럼 현지인들의 음식 취향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결국 월마트나 까르프가 한국에서 짐을 싸고 떠난 것은 중국 식당처럼 소비자의 입맛, 소비자의 정서, 요즘 유행하는 ‘눈높이’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

지난주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국회 청문회를 보면서 변하지 않는 우리 정치 셰프에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봄은 활짝 찾아 왔는데 우리들 식탁에는 어제도, 오늘도 신맛의 묵은 김치뿐이다. 이렇게도 국민들의 입맛을 외면하고 끼리끼리 음식만 내놓으니까 국민들로부터 점점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다.

판사 업무량이 너무 많아 과부하가 걸린다고 야단인데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는 1천200회가 넘는 주식거래가 도마에 오르자 청문회에서 ‘판사가 주업이냐. 주식투자가 주업이냐’는 비아냥까지 나왔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자기가 소유한 주식의 투자 회사와 관련된 재판을 맡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법관윤리강령의 중요 핵심인데 어떻게 이 기본적인 양식마저 저버릴 수 있었을까?

1급 요리사가 되려면 손님이 외면한 요리, 그 요리가 왜 그대로 접시에 남아 있는지를 냉철히 살펴야 한다. 그리고 왜 월마트와 까르프가 철수했는지도….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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