싹을 틔우기도 전에 벚꽃 등 봄꽃이 화려하게 필 때면 우리는 겨울을 이기고 봄이 왔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 꽃이 지고 있다. 이기는 것은 늘 의기양양하고 지는 것은 늘 우울하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듯 이기고 지는 게 아니다. 우쭐하거나 우울해할 일도 아니고, 한편에서 살고 한편에서 죽는 일도 아니다. 그들의 자리바꿈은 그저 살아있는 것들을 계속 살아있게 하는 일이다. 그러니 지는 것 같지만 아름답고, 이기는 것 같지만 우쭐해 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한쪽의 승리가 다른 한쪽이 주저앉아 일어설 수 없게 하는 거라면 그들의 세상에선 승리도 부끄러운 일이고 패배도 부끄러운 일일 것이다. 이기는 자를 위해 지는 자가 있는 게 아니라 서로를 담금질 해주며 주저앉지 않는 힘을 주기 위해 서로가 찾아오고 떠나는 것이다. 자연이 그렇게 하는데 사람인 우리는 늘 이기려고만 한다. 제대로 살아있고 서로를 살리기 위해 지고 이기는 게 아니라 나만 살기 위해 이기려 한다. 이기는 것도 가족과 조직과 사회를 위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라 한다. 그런 생각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가치라면 참 부끄러운 일이다.
부자가 되고 높은 지위에 오르고 권력을 잡고 싶어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문제는 구성원들이 더불어 사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생각보다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데 도움이 되는 사회를 만드는 데 관심이 쏠린다는 게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 사회에서는 그 부끄러움을 통제할 수 있는 건강한 가치가 자랄 수 없다. 최근 사회 각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저지르는 부끄러운 일들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 고위공직자 임명과정에서도 도덕성에 문제가 있다는 국민적 정서에도 불구하고 청와대는 국가 발전을 위해서는 도덕성보다 능력과 전문성을 중시해서 그들을 임명한다고 했다.
거기에 범여권도 도덕성보다 당파적 이익을 좇았다. 도덕성을 중시한다는 정권에서조차 이렇게 이기는 데만 관심이 있으니 무슨 도덕적 사회가 자리 잡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정직하게 살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더 많다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국가 지도자들조차 이러니 도덕성에 대한 자긍심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도덕성이 약화되는 만큼 국가는 더 발전했을까?
벚꽃이 지고 봄의 한 부분이 끝나고 있다. 지고 이기는 게 아니라 봄의 새로운 한 부분이 다시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살아가는 일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능력과 전문성을 권력을 잡고 이기는 성공보다 더불어 살 수 있는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열심히 사용하는 가치 있는 삶을 기대해본다.
이광용 수원여자대학교 교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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