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김없이 북수원 지지대를 지난다. 그야말로 신록의 계절임을 실감케 한다. 주위는 날이 다르게 푸름을 더해만 가고 있다. 오월의 기운을 그대로 전해준다.
오월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먼저, 어린이 날과 어버이 날이 있는 가정의 달이다. 가족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풋풋한 사랑을 전하는 달이다. 성인이면 우스갯말로 주머니가 가벼워지는 달로 속칭된다. 이런저런 선물과 용돈을 챙겨주려니 그도 이해가 된다. 이뿐 아니다. 스승의 날도 있다. 한 번쯤 보고 싶은 추억 속 스승님을 절로 생각나게 한다. 하지만, 마음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을 때가 많다. 일상을 핑계로 그리움 속 원안에서 맴돌 때가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필자도 수년간 그런 범주에 안주했다.
가정의 달은 삶에 활력소임이 틀림없다. 서로 간 소원했던 관계도 허물고 정도 보일 수 있는 명분 있는 달이다. 그런 기분 좋은 노래를 많이 부르고 싶은 계절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가슴 답답한 이유는 뭘까? 80년의 아픈 역사를 읊조리는 오월의 노래 때문이다. 올해는 더욱더 유난스럽다.
5ㆍ18 광주민주화운동은 어느덧 4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그때의 과거사는 아직도 규명 대상이다. 군인들의 총칼로 희생된 이들은 많은데 발포나 사격 명령자는 묘연하다. 아픈 과거사에 대한 진심 어린 반성이나 사과도 찾기 힘들다.
최근 주한미군 정보요원 출신 김용장씨가 밝힌 증언이 주목된다. 시민군에 대한 ‘사살명령권자’가 바로 전두환이란 얘기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전두환이 5월 21일 광주를 찾아 정호용 특전사령관, 이재우 505보안대장 등과 회의를 했고 목적은 사살명령이었음을 회고했다. 그러면서 그의 이런 추론이 합리적임을 재차 강조했다. 김씨는 방어차원에서 하는 발포명령과 사살명령은 완전히 다르다는 말도 했다. 또 같은 날 당시 505보안부대 수사관이었던 허장환씨의 증언도 나왔다. 그는 발포는 초병한테만 해당되는 말임을 전제한 뒤 전두환씨는 발포 명령권자가 아니라 사격 명령권자임을 주장했다.
아픈 40여 년 전의 일이다. 그때의 진실은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 그래야만 희생된 자에 대한 작지만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싶다.
김동수 지역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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