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4년 열린 한 경기도 탁구대회에서 유독 눈에 띄는 초등학교 선수가 있었다. 한 눈에 ‘될성부른 떡잎’으로 느껴졌던 그 소년은 10년 뒤인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단식 결승에서 중국의 왕하오를 꺾고 ‘탁구 황제’로 우뚝 섰다. 그 소년이 바로 한국 남자 탁구 사상 두 번째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된 유승민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탁구 천재’로 기대를 모은 유승민은 부천 내동중 2학년 때 최연소로 국가대표에 발탁된 후, 포천 동남고 3학년이던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최연소로 출전했다.
▶유승민은 화려한 선수생활을 마감하고 2014년 은퇴, 지도자의 길로 나섰다. 그리고, 불과 2년 후 그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이 돼 돌아왔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기간 진행된 IOC 선수위원 선거에 출마, 세계의 내로라하는 23명 후보들과 경쟁해 당당히 2위로 당선된 것이다. 그의 IOC 위원 당선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로 선거기간 내내 올림픽 선수촌을 혈혈 단신 누비며 얻어낸 값진 승리다. 그는 현재 우리나라의 유일한 IOC 위원으로 지구촌 곳곳을 누비며 스포츠 발전과 선수 인권 향상에 앞장서고 있다.
▶IOC 활동 뿐 아니라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와 국제탁구연맹(ITTF) 집행위원, 평창기념재단 이사장 등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그가 37세의 나이에 대한탁구협회장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일각에서 수장을 맡기에 너무 어리지 않느냐는 이견도 있지만 그의 출마 변은 명확했다. 유 의원은 현장의 고충을 가장 잘 아는 사람으로서 달콤한 결과보다 탁구 발전의 밀알이 되기 위해 내린 결정이라고 밝혔다.
▶탁구 천재의 ‘폭풍 성장’을 지켜보면서 그의 노력과 대견함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엘리트 선수를 거쳐 스포츠 행정가이자 외교관으로 자신의 꿈을 이뤄가는 모습을 보며 타고난 천재가 아닌, 노력하는 천재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는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 이후 국제 스포츠무대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스포츠 외교관이 거의 없다. 정부나 스포츠계가 인재를 육성할 토양을 만들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신선한 도전과 노력을 이어가고 있는 제2, 제3의 유승민을 키워야 할 때다.
황선학 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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