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나름의 색안경을 쓰고 세상을 살아간다. 그 색안경 색깔은 그 사람이 성장한 배경, 받은 교육, 내면적 심리상태 등 다양한 요인들에 의해 채색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기가 무슨 색깔의 안경을 끼고 있는지 깨닫지 못한 채 세상을 투명하고 올바르게 바라보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갈릴레오나 코페르니쿠스 혹은 다윈 등에 의한 과학적 업적으로 인해 인간이 잘못 본 오류의 상당 부분 제거되었지만, 그래도 지구는 평평하고 태양이 지구 둘레를 돈다고 믿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처럼….
물론 때로는 색안경을 통한 착시 현상은 삶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예컨대 처음 연애 감정에 빠져 들 때면 콩깍지가 씐 채 제 눈의 안경을 쓰고 상대방을 미화시켜 바라본다. <적과 흑> 작가 스탕달은 이러한 심리 작용을 썩은 나뭇가지에 아롱거리는 수정 구슬이 맺히는 것과 같은 현상이라고 하면서 <결정화작용>이라고 이름붙인 바 있다.
이와 같은 착시 현상은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고 대상이나 세상을 아름답게 변모시키기에 나쁘다고 할 수 없다. 또한 착시현상은 세상을 자신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예술적인 차원으로 승화될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대다수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자기가 보고 있는 것만이 옳다고 맹목적으로 믿는데 있다. 붉은 색 안경을 쓰고 있는 사람은 세상을 붉은 색으로 밖에는 보지 못하고 파랑색 안경을 쓴 사람은 파랑색으로만 세상을 보면서도 자신이 보는 세상만이 옳다고 고집한다. 개인적이건 집단적인 차원에서 이러한 맹목적인 믿음은 대화와 소통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혐오와 갈등을 조장할 뿐이다.
사실 타인이 무슨 색깔의 안경을 쓰고 있는지는 쉽게 분별할 수 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이 무슨 색깔의 안경을 쓰고 있는지 깨닫는 것은 쉽지 않다. 이 점에서 “왜 너는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느냐?”는 성경 구절은 오늘날 더 깊이 되 새겨보아야 할 대목이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 자신이 세상을 보는 렌즈의 색깔은 무엇이고 프레임의 형태는 어떤 것인지 깊이 성찰하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성찰은 색안경의 색깔을 제거하기 보다는 오히려 의도적으로 색칠을 더해가면서 우리 사회의 갈등을 증폭시키는 정치인들과 그들의 맹목적 추종자들에게 더욱 필요하다.
김연권 경기대학교 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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