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전선에 비상이 걸렸다. 북쪽에서의 침입을 우려해 철통같은 경계를 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니 더 더욱 걱정이다. 치사율이 100%에 가깝다는 가축 전염병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얘기다. 중국 본토를 휩쓸고 인접국으로 번진 돼지열병이 북한에 상륙하면서 국내로 유입될까 노심초사다. 남·북한 접경지역을 중심으로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방역 비상이다.
1920년대 아프리카에서 시작돼 야생 멧돼지를 통해 확산되는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세계적인 골칫거리다. 이 질병을 일으키는 아스파바이러스는 다른 바이러스보다 덩치가 크고 복잡해 아직까지 예방 백신과 치료제가 없다. 돼지가 이 질병에 감염되면 급성 열병을 일으켜 하루 이틀에서 10일 이내에 죽게 된다. 치사율이 거의 100%에 이르는 치명적 질병이다. 돼지열병이 일단 확산되면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의미다. 다행히 인간 전염 가능성은 없다.
1957년 포르투갈을 통해 유럽으로 들어온 돼지열병은 스페인과 프랑스로 확산됐다. 이 질병을 퇴치하기까지 42년의 세월이 걸렸다. 하지만 2007년 다시 그루지아를 통해 확산돼 동유럽을 초토화시킨 뒤 아시아로 번졌다. 지난해 8월 중국 동북지역에서 처음 발생한 질병은 9개월 만에 전역으로 확산됐다. 중국 전체 돼지수가 30% 정도 감소할 것이란 예측이다.
돼지열병이 몽골·베트남·캄보디아·홍콩 등 아시아 전역에 퍼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중국 랴오닝성 인근 북한 자강도의 북상협동농장에서도 발생했다. 돼지 99마리 중 77마리가 이 병으로 폐사했고 22마리는 살처분됐다. 북한 당국이 이동제한, 문제지역 예찰, 살처분, 소독 등으로 방역에 주력하고 있지만 전염성이 강해 국내 유입 가능성을 간과할 수는 없다.
돼지열병은 구제역보다 공기 전파 가능성은 낮다. 감염 매개체로 야생 멧돼지가 꼽힌다. 멧돼지는 이 병에 걸리더라도 별다른 증상을 보이지 않은 채 바이러스를 퍼뜨리며 살아간다. 때문에 북한 야생 멧돼지에 의한 바이러스 남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접경지역을 통한 전파 가능성이 우려되는 만큼 울타리 보수 등 물샐 틈 없는 방역관리가 중요하다. 돼지 사료로 쓰이는 음식물 쓰레기도 돼지열병을 퍼뜨리는 원인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밀수입된 축산물에서 바이러스가 전파될 수도 있으므로 국경 검역도 강화해야 한다.
정부가 지난 31일 남북 접경 10개 시·군을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했다. 경기도는 31일부터 김포·파주·연천 등 192개 농가를 긴급방역했다. 남북의 양돈 체계가 함께 붕괴되는 일이 없도록 남북의 철저한 방역협력이 절실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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