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강원도 산불로 두 사람이 생명을 잃었다. 그런데 처음 사망자는 1명으로 발표했다가 나중에 1명이 추가되어 두 명이 되었는데 그 과정이 매끄럽지가 않다.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삼포리에 사는 박모 할머니(71)는 초속 24㎞의 강풍을 타고 산불이 급습할 때 주민들에 대한 대피방송을 듣고 마을회관으로 가다가 강풍에 날아온 지붕에 맞아 숨진 채 발견됐다.
공무원들은 처음에는 개인 부주의에 의한 안전사고로 판단, 화재로 인한 사망자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그러다 어떻게 이것이 산불로 인한 사망자가 아니냐는 여론이 일자 뒤늦게 강원도 재난안전대책본부는 사망자로 인정하기에 이른 것.
공무원들이 안전사고라고 보고한 것은 직접 박모 할머니의 몸에 불길이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산불 사망자’로 보고했다가 자칫 훗날 감사에 적발될 수 있다.
감사에 적발되면 징계에 회부되고 그것은 신상에 불이익을 가져온다. 그래서 공무원들은 밖에서 ‘무사안일’이라고 비난하든 말든 후환이 없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박할머니는 그의 71세 생일을 맞는 날 안타깝게도 장례를 치렀고 유족들은 소정의 장례비와 보상금을 받을 수 있었다.
이처럼 공무원들의 발을 묶는 것은 ‘감사’라는 이름의 저승사자다. 필자가 지방자치단체에서 근무할 때 주민의 입장에서 새로운 일을 벌이려 해도 그럴 때마다 직원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나중에 감사 때 누가 책임질 겁니까?’ 하는 것이었다. 공연히 일을 벌여서 후환을 만들지 말자는 것이다.
그래서 공무원들은 ‘되는 쪽’보다 ‘안 되는 쪽’을 택하는 부정적 의식이 체질화돼 있다. 정말 공무원은 감사의 촘촘한 그물에 갇혀 산다.
자치단체의 자체감사가 있고 중앙정부의 감사가 있으며 가장 무서운 감사원 감사가 있다. 이 밖에도 층층마다 감사가 있어 1년 365일 감사 스트레스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국정감사는 또 얼마나 힘든가. 그러니까 소신껏 일하기 보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만 하면 제일 안전한 것이 된다.
언론에 보도된 ‘국수’(국장이 수정 지시), ‘과수’(과장이 수정 지시)하고 공문에 비밀표시를 해둔다는 것도 나중에 후환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공무원들의 휴대폰 압수도 잦아지자 휴대폰 관리에도 철저히 해야 한다. 심지어 어떤 공무원은 그동안 써오던 일기도 중단했다. 혹시 압수를 당할 경우 트집 잡힐 흔적을 없애기 위해서다.
이렇게 하는 것은 무슨 비리나 부정을 저질러서가 아니다. 그 ‘공무수행’이라는 것이 때에 따라 100점도 되고, 정권이 바뀌면 0점도 되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 때문에 헌법에 의해 공무원의 신분이 보장되고 정치적 중립도 보장받게 돼 있지만 그리고 그것이 당연하지만 우리 현실은 그게 아니라는 것에 비극이 있다.
최근 검찰총장이 웃옷을 벗어 흔들며 옷을 보지 말고 그것을 흔드는 손을 보라고 말한 것은 참 의미가 있는 내용이다.
흔히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 밑에서 환경부장관을 한 이만의씨는 국회에서 4대강 문제로 공격을 받았을 때 ‘환경부 공무원은 영혼이 있다’며 4대강 사업에 대한 환경부 공무원들의 입장을 옹호했다. 그러나 그후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감사를 무기로 삼아 옷을 흔드는 손이 문제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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