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노라 그리고 여성의 삶

노라는 집을 떠났다. 헨리크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에서 노라는 남편과 아이들을 두고 문을 나선다. 노라의 이야기는 1879년 초연된 이후 유럽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논쟁거리가 되었다. 그녀는 병에 걸린 남편과 세 아이를 돌보려고 위독한 아버지의 서명을 위조해 돈을 빌렸다. 아버지는 딸의 고난에 찬 상황을 모른 채 삶을 마감했고, 특별할 것 없던 남편은 병을 털어버리고 일어나 은행 총재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돈을 빌려주었던 크로그스타드가 위조된 서명을 가지고 그녀를 협박하면서 파국은 시작된다.

남편은 아내의 힘들었던 지난날보다 자신의 사회적 평판을 걱정하며 아내를 채근한다. 우여곡절 끝에 가정은 다시 평화를 얻지만, 노라는 행복한 가정이라는 꿈에서 깨어난다. “여자는 죽음이 임박한 아버지의 고통을 덜어 드려도 안 되고 남편을 구해도 안 되다니요!” 노라는 인형처럼 살기를 거부하고 집을 떠난다.

지금까지도 사람들은 집을 떠난 노라의 삶에 대해서 궁금해한다. 1924년 중국의 문호 루쉰은 여성의 진정한 자립을 위해서는 경제권을 가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려면 가정에서 남녀 간에 균등한 분배, 사회에서도 동등한 권리를 이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21세기 오늘날 여성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지난 1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을 보면 전체 여성 고용률은 남성보다 19.9%p 낮은 50.9%이고, 여성 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은 남성의 68.8% 수준이다. 결혼, 임신, 육아 등에 따른 경력단절의 영향으로 연령대별 고용률에서 30대의 고용률이 떨어지는 엠커브(M-Curve) 현상은 지속하고 있다.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지난 세기 동안 여성의 삶은 어느 정도 개선되었다. 그러나 여학생 대학 진학률은 남학생보다 7.9%p 높은 73.8%이지만, 여성 관리자 비율은 20.6%에 불과하다. 아직도 부족하다. 노라의 불행을 없애버리기에는 아직도 부족하다.

손영태 경인지방통계청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