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인권사각 결혼이주여성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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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출신 이주여성이 두 살배기 아들 앞에서 한국인 남편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한 사건에 국민적 공분이 일고 있다. 공개된 영상에는 남성이 여성의 빰과 머리, 옆구리를 주먹과 발로 마구 때리는 모습이 담겼다. 어린 아이가 ‘엄마, 엄마’를 외치며 우는데도 남성은 아랑곳 않고 발길질을 멈추지 않았다. 피해 여성은 한국말이 서툴다는 이유로 남편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한다.

폭행 당하는 영상은 베트남 피해 여성이 찍은 것으로 지인에 의해 페이스북에 공개돼 급속도로 퍼졌다. 지인은 게시물에 베트남어로 “한국 정말 미쳤다”고 적었다. 페이스북 측은 폭력성이 심해 영상을 삭제했지만, 누리꾼들이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에 영상을 퍼나르며 논란이 커졌다.

한국에 온 이주여성들의 인권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지난해 12월엔 경남 양산에서 필리핀 출신 이주여성이 집에서 남편이 휘두른 흉기에 살해된 사건도 있다. 이 여성은 한국에서 7년 동안 살았지만 철저히 고립됐었다. 시신을 고향 필리핀으로 운구할 돈도 모자라 지자체가 성금을 모아 가까스로 고향에서 장례를 치렀다. 건강한 여성을 한국으로 시집 보냈는데 7년 만에 시신으로 돌아오니 가족들은 얼마나 비통해하며 울분을 토했을까.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결혼이주여성 10명 중 4명이 가정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폭행, 흉기 협박, 성적 학대를 당하는가 하면 욕설 등 심리언어적 폭행을 겪고 있다. 2007년부터 약 10년간 국내에서 폭행 등으로 숨진 결혼이주여성이 19명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가해자는 대부분 남편이었다. “때리지 마세요”가 결혼이주여성들의 일상어, 필수어가 됐다고 하는데 참담하고 부끄럽기 짝이 없다.

하지만 이들의 폭력은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남편이나 시댁에서 여권을 압수해 꼼짝 못 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결혼이주여성을 위한 정책이 있기는 하다. 상담 전화를 개설하고, 폭력을 당하거나 갈 곳 없는 여성을 위해 쉼터도 운영한다. 외국인 신부를 맞는 남성에게 문화 다양성, 인권, 가정폭력 방지 교육도 한다. 그러나 이런 지원 방안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여성들이 많다. 안다 해도 외부 도움을 요청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국제결혼은 매년 전체 혼인의 7~11%를 차지한다. 저출산 고령화로 외국인 노동력은 더 늘어나고 국제결혼 증가로 결혼이주여성도 더 많아질 것이다. 외국인 이주자와 다문화가정의 자녀는 우리 사회 주요 구성원이다. 이들을 보듬고 함께 가야한다. 당연히 인권도 존중돼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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