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 ‘임두목’으로 불린 임사빈 경기도지사(1987.12~1990.6)는 중앙(내무부)과 경기도, 그리고 국회에서 큰 활약을 했다. 공무원 말단에서 시작해 도백에 오르고 국회의원을 한 분이니 그 인생은 늘 새로움과 기록의 연속이었다. 경기도 출신 도지사라는 긍정의 평가도 높았다.
2년6개월간 재임한 임사빈 경기도지사는 공직자와 언론의 반대에도 기채를 내서 의왕~과천 유료 고속도로 건설을 시작했다. 당시에는 ‘맨땅의 헤딩’으로 보였지만 오늘날 ‘수도권 순환도로’로 개칭논의가 활발한 수도권외곽고속도로와 연결되어 수원, 의왕과 과천 교통의 중심이 되었고 경기남부~서울~경기 북부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가 되었다.
임사빈 도지사는 내무부 근무 시에도 보스형 공직자로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공보부서 근무를 하다가 승진해 자리를 옮긴 이후에도 수많은 내무부 출입기자들이 이분의 방을 들락거리며 기사를 취재했다고 들었다. 그만큼 선 굵은 인물로서 늘 큰 그림을 많이 그렸다.
일화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토요일 오후에 이른 숙직을 하고 있는데 시ㆍ군에서 정보사항이 들어왔다. 성남시 어느 공원에 도지사가 오셨단다. 혼자서 경기1가1000번 승용차를 운전해서 오셨단다. 당직실은 비상이 걸렸다. 인근 시ㆍ군 당직실에 전화해서 관내에 도지사가 가실 수 있으니 대비하고 동향보고를 해달라 전했다.
당시에는 그랬다. 도지사가 시군지역을 가는 것은 사건으로 받아들였다. 임명직 시장ㆍ군수들은 토요일 오후에 비상이 걸렸을 것이다. 삐삐가 일부 보급되던 시절이니 비상연락이 쉽지 않아 당직실 근무자들의 고충이 컸을 것이다.
임 지사의 무게감은 대학생 도지사실 난입사건에서 입증됐다. 어느 날 대학생 5명이 비서실 책상을 부수고 화염병을 들고 도지사실에 난입했다. 도지사는 수행원과 함께 옆문으로 피신했고 부지사가 남아서 대응했다. 윤세달 부지사는 ‘내가 도지사다’라며 버텼고 학생들의 각목 공격을 주변의 육사출신 과장과 또 다른 계장이 막아냈다. 두 공무원은 표창을 받았다. 부지사는 화장실을 직접 뒤지며 대학생들을 수색하고 체포했다.
상황이 종료되자 임사빈 도지사가 기자실에 찾아와 보도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보안이 뚫린 것은 사실이기에 도정 책임자로서 언론에 보도하지 않도록 협조를 요청한 것이다. 직전까지 카메라를 동원해 도지사실과 비서실의 파손된 집기를 촬영해 언론에 알리려 한 간부들은 머쓱했다. 역시 큰 인물은 세상도 넓게 본다. 당시의 7급 공무원은 그렇게 느꼈다.
이강석 前 남양주시 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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