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무더위가 찾아오려는지 볕이 유난히 따갑다. 늦장마 예고로 습기까지 가세해 말 그대로 푹푹 찌는 여름이다. 이렇게 더위가 찾아오면, 우리 같은 사회복지사들은 피서를 떠날 생각보다 혹서기에 고통받을 우리 아이들이 먼저 떠오른다.
유정이(가명)네는 전국에서 아동가구 주거 빈곤율이 가장 높은 지역에 살고 있다, 이 지역 집 대부분이 불법으로 내부 구조를 변경한 다가구 원룸 주택이다. 다섯 평 남짓한 방 한 칸에 다섯 식구가 모여 사는데, 빨래를 하면 세탁물을 널어놓을 공간이 없어 건조대를 편 자리 아래서 아이들은 몸을 구긴 채 잠이 든다. 창이 하나인 방은 통풍이 전혀 되지 않는다. 커튼을 걷으면 벽지가 곰팡이로 새까맣다. 이 때문에 아이들은 감기와 기침을 늘 달고 산다.
유정이와 같은 아동을 우리는 ‘주거빈곤 아동’이라 부른다. 전국 94만 4천 명의 주거빈곤 아동 중 85만 8천 명이 유정이처럼 최저주거기준이 미달된 집에서 살고 있다. 그나마 지하 옥탑 거주 가정이나 비주택으로 분류되는 비닐하우스, 고시원과 같은 곳에 사는 아이들보다는 나은 케이스다. 축축하고 어두운 방에서 주거빈곤 아동들은 집과 함께 몸도 마음도 병들고 있다.
지난 4월 23일 지원이 필요한 아동에게는 임대주택이나 주거비를 우선 지원할 수 있도록 주거기본법이 개정됐다. 주거와 관련해 아동을 지원할 수 있는 법 조항이 마련됐다는 것은 분명히 고무적인 일이나, 더 근본적인 변혁을 위해 적극적인 기준 마련과 강제성을 강화할 수 있는 규정이 필요하다. 아동이 안전한 환경 가운데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비주택 거주 아동에 대한 전수조사와 더불어 개선을 위한 명확한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
몇 년 전, 주거빈곤 아동 지원사업을 통해 새 주택으로 이주한 가정의 어머니 말이 떠오른다. “이제 집안 경제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려고 뭐라도 시작해보려고요. 이전 집에 살 때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신기하게도 마음가짐이 달라졌어요. 집과 함께 다시 태어난 기분이에요.” 노후 된 집과 함께 의지마저 무너져 있던 그녀였다. 얼굴에서는 이전 집에 살 때는 찾아볼 수 없었던 생기가 맴돌았다. 새집과 같이 반짝반짝 빛나던 가족들의 모습에서 주거의 변화만으로 가정이 달라지고 우리 아동들이 다시금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길이 보였다. 역대급 폭염이 예고되는 혹서기를 앞둔 지금, 주거빈곤 아동들에게 희망의 손길을 내밀 때이다.
이종화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경기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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