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화수소는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세정에 사용된다. 불필요한 부분을 깎아내는 에칭(etching, 식각) 공정과 불순물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사용되는 독성이 강한 부식성 기체다. 국내에서는 환경규제로 생산이 쉽지 않아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오래 보관할 경우 물질 특성이 바뀌기 때문에 필요한 양만큼만 수입해 사용한다. 고순도 불화수소는 에칭가스라고도 부르는데 이를 사용하면 생산량 대비 결함없는 제품 비율이 높아지고 품질도 신뢰할 수 있게 된다. 현재 고순도 불화수소는 대부분 일본에서 생산된다. 국내 화학재료 업체가 일본에서 수입, 정제해 완제품으로 만들어 삼성,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제조사에 납품하고 있다.
일본이 이달 초 느닷없는 경제보복의 하나로 불화수소 등 3개 품목의 한국 수출을 규제하고 나섰다. 고순도 불화수소의 대일 의존도가 높은 한국 반도체 기업에 타격을 주겠다는 의도다. 우리 반도체 산업이 직격탄을 맞았다. 재고가 바닥나면 더 이상 반도체 생산이 불가능해진다. 자칫 반도체 신화가 무너지고, 국민 경제가 흔들릴 수 있는 심각한 위기 상황이다.
한국 반도체 기업이 올해 초 5개월 동안 일본에서 수입한 반도체 공정용 불화수소 규모는 2천844만 달러 정도다. 전 세계 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우리 반도체 기업에는 결코 크다고 할 수 없다. 실제 반도체 원가에서 불화수소가 차지하는 비중은 계산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작다. 하지만 반도체 공정에서 없어선 안되는 특수소재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일본이 수출규제를 통해 한국을 위협하고 있다.
세계 자유무역 체제를 정면으로 거부하고, 한국을 공개적으로 모욕하는 일본의 졸렬한 만행을 용납할 수 없다. 일본의 괘씸한 행태에 분노한 국민들이 ‘보이콧 재팬(일본제품 불매)’을 외치며 광화문 촛불집회까지 다시 열고 있다. 정부는 아베 정부를 비난하며, 뒤늦게 소재ㆍ부품 국산화에 나섰다. 이전에도 소재ㆍ부품ㆍ장비의 국산화 정책을 폈지만 예산, 인력, 규제 등 여러 문제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일이 터지고 나서야 심각성을 인식한 정부가 매년 1조 원을 투입해 국산화를 서두르겠다고 하는데 하루 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라 답답하다. 소재·부품 분야에서 이런 사례가 또 일어날 수 있기에 걱정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이번 사태를 똑바로 직시하고 현실적 대안을 찾아야 한다. 소재ㆍ부품 국산화 관련, 중장기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미국이나 WTO 회원국들이 우리 입장을 대변해줄 것이라는 기대는 갖지 말아야 한다. 복잡한 이해 관계로 뒤엉킨 국제사회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냉혹하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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