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날두가 45분 이상 경기를 뛰기로 했지만 단 1분도 경기장에 나서지 않자 우리 축구팬들이 단단히 화가 났다. 더구나 바로 이틀 전 중국에서 90분 전 경기를 뛰었던 사실과 비교해보면 왠지 무시당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다른 어떤 스포츠 종목보다 축구는 국민의 자존심과 깊이 연관되어 있어 유벤투스와 호날두에 대한 우리 축구팬들의 분노는 쉽게 식지 않을 듯하다.
‘FIFA U-20 월드컵’에서 우리의 어린 축구 대표선수들은 최고의 경기력을 보이며 결승까지 진출했다. 우리 축구팬들은 어린 선수들의 쾌거에 열광하며 밤잠을 설쳤고, 2002년의 벅찬 감동을 재현했다. 그러나 그 감동은 두 달이 채 안 된 지금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고, 우리는 한일관계, 북한 미사일, 경제난, 취업난 등 험난한 현실의 무게에 허덕거리고 있다.
축구는 잠시 우리에게 집단적 열광과 감격을 주지만, 그뿐이다. 우크라이나는 U-20에서 우승한 후 열광의 도가니 속에서 잠시 환호했지만, ‘유럽과 러시아 사이의 정체성 혼란’ 속에서 정치적 불안과 경제적 불황 속에 여전히 신음하고 있다. 또한 1998년과 2018 월드컵에서 우승한 프랑스 대표팀은 프랑스 인종 화합의 상징으로 잠시 주목받았지만, 프랑스 사회는 불관용과 배타적인 반이민정서로 점점 곪아가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축구는 축구일 뿐이다. 감격과 갈채는 잠시일 뿐 축구가 복잡한 국내·외적 갈등을 해결해주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 U-20 월드컵 팀은 답답한 우리 사회에 희망의 메시지를 제시해 주고 있다. 1983년 4강 신화를 달성한 박종환 감독의 청소년 팀은 권위주의적 리더십 체제의 우리 사회를 반영한다면, 2019년 준우승을 달성한 정정용 감독의 청소년 팀은 상호 이해와 부드러움의 리더십의 강함을 보여주었다.
우리 청소년 팀에서는 일방적인 지시나 권위가 사라지고 막내가 형으로 불리는 모순어법이 자연스럽게 통하는 분위기였다. 그 속에서 선수들은 재기 발랄함과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자발적으로 상호 이해하는 하나의 팀으로 태어날 수 있었다. 그러기에 “우승을 못해 섭섭한 것이 아니라 이 멋진 팀에서 헤어져야 한다는 것이 더 섭섭하다”는 어느 선수의 소회가 쉽게 수긍된다. 이 멋진 청소년 팀 속에서 우리는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김연권 경기대 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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