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 노년에 관하여

손영태
손영태

소년은 허약하고 청년은 저돌적이고 장년은 위엄이 있고 노년은 원숙하다. 키케로는 삶의 네 단계 중에서 원숙한 노년의 최선은 학문을 닦고 미덕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런 노년은 카이사르 앞에서 자신의 소신을 피력했던 키케로에게나 가능한 일이 아닐까.

이웃나라 이야기다. 평생 양복점을 운영했던 한 노인이 은퇴하고 부인과 함께 약간의 예금과 연금을 받으며 평온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부인이 알츠하이머로 투병을 시작하면서 그 작은 평화는 깨어진다. 매달 나오는 연금을 부인의 병원비로 모두 사용하고, 부인의 장례식 비용으로 모아둔 예금 때문에 국가로부터 지원도 받을 수 없게 되자 노인은 끼니를 걱정하게 된다. 착실하게 일하고 저축하고 연금도 부었지만, 어느 날 노후파산에 이른 것이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2018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를 보면 은퇴한 가구주의 절반 이상은 생활비가 부족하다고 응답했다. 또 다른 조사에서는 부모의 노후를 가족들이 돌보아야 한다고 응답한 경우가 2008년 40.7%에서 지속적으로 감소해서 2018년 26.7%까지 떨어졌다. 대가족 중심의 농경사회와 달리 산업화되면서 현대인들은 제도적이고 비자발적인 은퇴를 경험하게 되고 핵가족화되어 자식이나 친척들의 도움 없이 노년을 맞이하게 된다.

최근 나온 고령층 부가조사 결과를 보면 55~79세 응답자의 45.9%가 월평균 61만 원의 연금을 수령하고 있다. 1인 가구 최저생계비보다 적은 금액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취업을 원하는 고령층의 응답자 두 명 중 한 명은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일자리를 구하고 있다.

올해 초 대법원은 우리나라의 사회적 경제적 구조와 생활여건의 급속한 변화를 감안해서 65세까지 육체노동이 가능하다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은 공중보건의 개선과 의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평균수명의 증가와 자동화에 따른 노동환경의 변화 그리고 저출산에 따른 노동력 부족을 반영한 것이다.

그렇지만 정년연장 논의는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년연장을 두고 청년실업과 연계해 세대 간의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정년연장은 경제적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적 문제이기도 하다. 사회적 안전망이 꼼꼼하게 구축되어 있다면 노년층의 빈곤이나 노후파산을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또한 정년연장은 노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원숙한 노년의 삶을 누릴 권리가 있고 당연히 누려야 한다. 키케로의 말처럼 우리는 인생이라는 긴 연극무대에 서 있다. 누구도 자신의 연극이 끝나기 전에 쓰러져서는 안 된다.

손영태 경인지방통계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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