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교회 세습? 故안중섭 목사를 추억하며

최고 수원제일교회 일군 장본인
아들 세습? ‘말도 못 꺼내게 해’
‘참된 목사’로 신도 가슴에 남아

늘 흰색 고무신을 신었다. 양복 차림 때도 신었다. 그런 고집이 곧 신앙이었다. 성경 속 원칙을 철저히 따랐다. 정치에 대해서는 특히 엄했다. 예나 지금이나 교회는 표밭이다. 정치인들이 그렇게 계산한다. 그래서 선거만 되면 나타난다. ‘아무개 의원님 오셨습니다’. 이런 소개를 받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는 용납하지 않았다. 그래서 애 태웠던 정치인들이 꽤나 많았다. 1980년대 수원제일교회다. 거기 당회장, 고(故) 안중섭 목사다.

수원제일교회를 키운 장본인이다. 1966년 부임해 무섭게 성장시켰다. 수원을 대표하는 교회가 됐다. ‘가장 큰 교회’가 됐고, ‘가장 힘 있는 목사’가 됐다. 하지만, 아무것도 갖지 않았다. 떠날 때도 평신도들과 똑같았다. 운명한 그날의 순서를 따라 안장됐다. ‘목사라 해서 특별한 곳에 묻지 말라’는 그의 뜻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개발 수요에 밀려 교회 묘지가 옮겨졌다. 그제야 장로들이 ‘이러면 안 된다’며 조금 나은 곳으로 모셨다.

아들 둘이 목사다. 일찍부터 그 길을 갔다. 한 명쯤 그의 뒤를 이을 줄 알았다. 장로들도 당연히 그럴 거라 봤다. 하지만, 그는 단호했다. 이 교회 50년 신도 ‘박장순 안수집사’가 증언한다. “아들을 수원제일교회 목사로 세우는 얘기는 말도 못 꺼내게 하셨다.” 두 아들도 아버지 뜻을 따랐다. ‘형 목사’는 해외에서, ‘동생 목사’는 국내에서 목회를 했다. 후임은 이규왕 목사였다. 그도 똑같이 따랐다. 20년 열심히 일했고 박수받으며 퇴임했다.

모두 수원제일교회 같았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은 곳이 많다. 그 사달이 명성 교회 세습으로 터졌다. 설립자인 아버지 목사가 아들 목사에게 담임직을 물려줬다. 교인들이 반발하고, 종교재판까지 열렸다. 참으로 볼썽사납다. 그런데 여기가 처음이 아니다.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가 그 실태를 조사했다. 정식으로 접수된 교회만 143개다. 모두 대물림하고 세습한 교회다. 자식에 줄 개인 선물쯤으로 여기는 교회다.

그 수법이 기가 차다. 세상을 속이는 해괴한 변칙이 다 등장한다. 자녀 목사에게 독립된 교회를 세워준 뒤, 본(本) 교회와 합친다. ‘합병에 의한 교회 세습’이다. 규모가 비슷한 교회 목사끼리 상대 자녀 목사를 받아준다. ‘교차부임에 의한 세습’이다. 외부 목사를 초빙한 뒤, 사임시키고 자식에게 물려준다. ‘징검다리 세습’이다. 일반 회사였다면 벌써 감옥 갔을 일이다. 상법(商法)ㆍ상속법(相續法)에 걸려 패가망신했을 일이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다. 도덕은 인간의 규율이다. 도덕은 최소한의 성경이다. 성경은 성직자의 규율이다. 세인(世人)은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런 성직자들이 이제는 인간의 마당에 막 뛰어든다. 그리고 싸운다. ‘이 교회는 내 것’이라고 싸우고, ‘내 아들한테 주겠다’고 싸운다. 그 싸우던 입으로 또 설교할 거 아닌가. 하나님 말씀대로 살라고 강권할 거 아닌가. 성경 어디에 그런 구절이 있나. 자식에 교회 물려주라는 말씀이 어디에 있나.

1983년 한 남자가 죽었다. 신앙이 깊지 않았다. 암(癌) 때문에 교회를 찾았다. 고침 받고 싶어했다. 안 목사가 챙겼다. 볼 때마다 기도해줬다. 가난한 그의 초상집을 찾았다. 남자 관(管)에 손을 얹었다. 기도가 오래가지 않았다. 머리를 숙인 채 관만 쓰다듬었다. 그 사이로 눈물이 계속 떨어졌다. 남자의 ‘어린 아들’이 그걸 봤다. 그 순간의 안 목사는 아버지를 인도할 천국의 사자(使者)였다. ‘중년이 된 아들’에게도 여전히 남은 추억이다.

고(故) 안중섭 목사. 그가 세습한 것은 교회가 아니다. 대(代)를 이어 추억하는 신도들의 마음이다. 그 시효 없는 자산을 영원히 교회에 남겼다. 이게 우리가 아는 성직자의 길 아닌가. 한국 교회, 정신 차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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