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아버지 눈물

“쳇 별별 놈이 다 있군”. 젊은 면접관이 푸념처럼 내뱉었다. 20대 여성이 접수한 지원서다. 면접장에 입장한 것은 중년의 아빠다. 허드렛일을 하는 일용직 근로자로 보인다. 그래도 다른 면접관이 질문했다. “502번 김정은씨 맞나요.” 눈치를 살피는 아빠, 청각장애인이다.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낸다. 그 속에 면접 당사자 여성이 나온다. 아마도 면접을 준비하며 찍어둔 영상인듯하다. “저는 한국 대학교 일어학과를 졸업했으며…”. ▶“10년 후의 자기 모습은 어떨 거 같나요”. 휴대전화를 뒤진 아빠가 다시 영상을 내민다. 딸이 아빠에게 남긴 말인듯싶다. “나, 이 회사에 합격했을 거야. 연봉 6천에 커리어우먼 돼 있을걸”. 밝게 시작한 딸 음성이 점차 떨린다. “그런데 아빠…미안한데, 아빠가 이 영상 볼 때쯤…난 아마 아빠 곁에 없을 거 같애…아빠 미안해…너무 무서워…”. 굳이 결말을 연상할 필요도 없다. 수많은 사람이 이 동영상에 울었다. ‘마지막 면접’이다. ▶어린 아기를 둔 젊은 아빠들을 설문했다. 아동 발달에 대한 설문이라고 속였다.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이 뭔가요’ ‘지금 아이의 사진이 몇 장 있나요’…. 모두들 미소 가득한 표정으로 답을 써내려갔다. 이어 질문의 대상자를 바꿨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식이 뭔가요’ ‘지금 아버지의 사진이 몇 장 있나요’…. 젊은 아빠들의 표정이 숙연해진다. 열심히 써 가던 손이 멈췄다. 순간, 사무실 한 켠에 모니터가 켜진다. 그들의 아버지였다.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초로의 아버지다. “부모로서 뭔가를 충분히 해줘야 되는데, 그걸 못해줘서 마음이 아픕니다.” “계속 부족한 게 부모 마음 아닐까요, 죽는 순간까지” “너무 엄하게 했던 게, 그게 제일 미안해요.” 영상 속 아버지들은 눈물을 삼키며 참아낸다. 모니터 앞 젊은 아빠들은 뜨거운 눈물을 쏟아낸다. 잠시 뒤, 아버지ㆍ젊은 아빠ㆍ아기가 만난다. KB 은행이 사원들을 주인공으로 만든 동영상-하늘 같은 든든함, 아버지-이다. ▶‘마지막 면접’은 떠난 딸을 기억하는 아버지다. 힘없고 배경 없는 자신의 슬픔을 그린다. ‘하늘 같은 든든함, 아버지’는 성공한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다.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자신들의 미안함을 그린다. 둘 다 꽤 된 영상이다. 이미 많은 이들이 가슴을 저몄다. 세상 아버지가 다 그렇다. 자식 앞에 늘 부족하다. 세상 능력 없음을 자책한다. 실패한 자식 앞에도 죄인이고, 성공한 자식 앞에도 죄인이다. 아마 ‘1% 아버지’를 빼곤 다 그럴 거다.

김종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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