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랑시에르’ 무지한 스승을 읽고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지능에 대해 새로운 각도를 갖게 된 점을 정리해 보았다. ‘스승의 본질적 행위는 설명하는 것, 지식에서 간단한 요소들을 끌어내는 것, 그리고 지식의 단순한 사실을 일치시키는 것이다. 가르친다는 것은 지식을 전달하는 동시에 잘 짜인 점진적 순서에 따라 가장 단순한 것에서 가장 복잡한 것으로 정신을 이끌고 가면서 그 정신을 형성하는 것이며 사회가 요구하는 만큼 그들은 성장한다. 더 잘 이해하도록 계속적인 설명이 필요하고 끊임없이 개선을 거치고 있으며 이해시키는 방식의 모든 개선은 ‘바보 만들기’의 진보가 되고 이런 상태에서 학생들은 다른 어떤 지능도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라고 했다. 이런 교사의 전달 교육이 학생의 학습이 일어났는가를 주의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이 쓴 단어로 우리가 생각하는 바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사람은 배우고자 할 때 자기 자신 욕망의 긴장이나 상황 때문에 설명해주는 스승 없이도 혼자 배울 수 있다고 한다. 학생은 혼자 힘으로 모든 것을 보고, 쉼 없이 비교하고, 늘 세 가지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무엇을 보고 있니? 너는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너는 그것으로 무엇을 하니? 이렇게 무한히 말이다. 우리는 지적 질서 속에서 한 명의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자신도 할 수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두 종류의 정신이 있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지능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한다. 새로운 관계를 발견하고 조합하기 위해 의지가 지능에 전달하는 힘이 더 크냐 작냐에 따라서 지능의 발현들에 차이는 있다. 그러나 흔히 말하는 지능이 높고 낮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험을 감행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더 잘 배우거나 못 배우거나, 더 빨리 배우거나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두뇌와 식물의 잎사귀를 비유하면서 수천 장의 잎사귀가 다르듯이 인간의 모든 지능은 다르다. 같은 환경에서 두 사람이 실험했을 때도 차이를 보인다. 더 강한 어떤 의지가 없거나 욕구가 멈추는 곳에서 지능은 멈추고 결과적으로 지적인 성과는 그 사람의 의지에 따라 다르다고 했다. 그래서 지능은 훈련이 필요하다. 신체에 꼭 필요한 습관을 들이기 위한 지칠 줄 모르는 노력, 자신의 의도대로 다시 만들고, 불운한 상황을 성공의 기회로 바꾸기 위한 지칠 줄 모르는 노력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정승자 곡반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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