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건축사의 사회적 책무

우리는 흔히 집을 지을 때 주변에 잘 아는 주택건설업자에게 부탁하는 경우가 많다. 집을 지으려면 우선 건축설계부터 해야 하는데, 어떤 규모, 어떤 수준의 집인지도 모르고 무턱대고 집을 지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다. 마치 “텔레비전 한 대에 얼마예요?”라고 묻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몇 인치짜리 인지, 제조회사는 어디고, 사양은 어떤지도 정하지 않은 채 말이다.

하물며 수억 원에 달하는 집을 지으면서 알아서 해 달라는 것은 무지에서 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무한 신뢰에서 나오는 것인지 모르지만 위험천만 한 일인 것만은 분명하다. ‘설계는 건축사에게, 시공은 주택건설면허를 가진 유자격 건설업자에게’라는 말을 하고 싶다. 이것은 무조건이다. 건축설계는 건축사 자격증을 가진 건축사가 제반 절차에 의해 건축사 사무소를 개설한 자만이 가능하다. 설령 건축사 자격증만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건축사사무소를 개설한 자가 아니면 건축 인ㆍ허가 업무를 수행할 자격이 없다.

물론 최근 매스컴 등을 통하여 건축사에 대한 인식과 역할에 대하여 예전에 비하면 상당히 좋아진 것은 사실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왕왕 이런 경우가 많다.

좋은 집을 지으려면 우선 좋은 건축사를 만나서 협의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주변에는 건축사가 아닌 사람들이 마치 본인이 설계와 시공을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건축주를 혼란스럽게 할 뿐 아니라 건축시장 질서까지 어지럽히는 일이 종종 있다.

“제가 알아서 설계와 시공을 다 해 드릴게요”라는 말은 엄격히 따지면, 위법의 요지가 상당히 많다. 어떻게 알아서 한다는 것인가. 업자의 이익을 최대한 고려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건축주의 이익을 최대한 고려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적법한 절차를 거쳐 개설된 건축사 사무소는 ‘○○○ 건축사 사무소’라는 명칭을 쓴다. 혹시 주변에 ‘○○○ 건축사무소’라는 짝퉁 간판을 봤다면, 이는 십중팔구 정상적인 건축사 사무소가 아닐 것이다. ‘○○○ 변호사 사무소’를 ‘○○○ 변호사무소’라고 하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나 할까. 이렇게 되기까지는 건축사들의 책임도 있다.

건축사의 입장을 대변해 주는 건축사협회도 자신들의 이익과 권익보호를 위한 활동도 중요하지만, 좀 더 국민 곁으로 다가가야 한다. 건축에 관련된 봉사 활동도 더 많이 하고, 시민 건축대학이나 알기 쉬운 건축법 강의 등의 재능기부를 많이 해 국민께 건축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 드려야 한다.

김동훈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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