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1988년 11월17일 열린 국회 ‘5공 비리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 현장. 대한민국 헌정사상 처음으로 텔레비전을 통해 생방송 된 청문회는 전두환 전 대통령 친동생 전경환씨의 새마을운동 중앙본부 비리와 관련한 구속으로 이뤄졌다. 특히 ‘광주학살’을 무자비하게 자행한 전두환 정권을 심판하고 민낯을 낱낱이 밝혀줄 특위에 국민의 눈과 귀가 쏠렸다. 하지만 증인들의 도도하고 뻔뻔한 자세, 불성실한 답변은 국민을 분노케 하고 강압적 자세로 호통만 일삼는 일부 의원들의 질의 아닌 질타는 역시나 하는 허탈감과 함께 실망감만 안겨주었다. 하지만, 보자기를 들고 들어오는 한 의원은 달랐다. 이제 정치 입문 6개월 만인 초선의 노무현 의원. 그가 보자기를 풀면서 쏟아내는 질의는 철저하게 준비된 객관적 자료를 바탕으로 증인들을 몰아세웠다. 이종원 전 법무장관, 장세동 전 안기부장, 정주영 현대그룹 사장 등을 상대로 정곡을 찌르는 질문은 청문회를 답답하게 지켜보던 국민의 맘을 시원하게 뚫어줬다. 요즘 말로 ‘사이다’ 질의다. 5공 비리 특위는 노무현 의원을 국민적 스타로 만들었고 ‘청문회란 이런 것’이라는 모범 답안을 보여줬다.

2019년 8월부터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놓고 정치권이, 국민이 갑론을박하고 있다. 인사청문회는 대통령의 인사권 남용을 막고 고위 공직자들이 공직에 취임할 만한 도덕성과 정책 수행 능력을 갖췄는지를 검증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듣지도 보지도 못한 청문회 아닌 청문회가 열렸다. 후보자가 자청해 마련한 ‘기자 간담회’. 국회의원과 달리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기자들의 질문은 한계가 있고 상대적으로 후보자는 여러 의혹에 대한 해명, 설명만 할 뿐이다. 이런 자리가 8시간을 넘든지 사나흘 동안 한다 해도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인사 청문회는 보수, 진보 간의 진영싸움이 아니다. 비리나 불법 행위를 저지른 인물이 고위 공직자가 된다면 국민 삶만 고단하다. 더욱이 법무부 장관이라면 어느 인사보다 높은 도덕성이 요구된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이 있다. 때문에 조 후보자를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일반인이 아닌 법무부 장관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이 왜 있겠는가. 김창학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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