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소리 없이 문턱을 넘어
가만히 내게로 왔습니다
기승스럽던 더위가 한 풀 꺾인 것을 보고
그것을 짐작 했습니다
매미의 요란한 울음소리로 가을이
가까이 왔음을 확실히 알았지요
서둘러 얇은 긴 소매의 옷을 꺼내 입어야겠군요
모양 없이 아무렇게나 모자 속에 쑤셔 박았던
머리도 깔끔하게 다듬어 보겠습니다
아직 덜 익은 사과 몇 알과
두어 웅큼의 풋대추를 멜빵 달린 가방에 넣고
기차를 타고 버스를 갈아타고
보고픈 친구를 찾아 가겠습니다
사과의 신 맛을 생각하니 입에 침이 도네요
보면 먹어야 늙지 않는다는 대추도 한 알씩 나누어 먹겠습니다
한가롭게 원두막에 퍼질러 앉아
설탕과 크림이 섞인 커피를 종이컵에 마시며
우린 너무 촌스런 할머니들이 되어버렸다고
서로 흉보며 위로하며
목젖이 보이도록 함박웃음을 웃겠습니다
그것은 가을이 소리 없이
내게로 왔기 때문입니다
김도희(본명 김인숙)
<스토리문학>으로 등단. 국제PEN한국본부, 한국문인협회 회원. <시인마을>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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