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웃음 전도사의 폐암

1980년대 후반쯤이다. 대학로 한 켠에서 그를 봤다. 기타 하나 들고 공연을 하고 있었다. 지금은 길거리 공연이 자리를 잡았다.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길거리 공연을 ‘걸인’ 취급했다. 그 어색한 일을 그는 당당하게 했다. 노래도 하고, 개그도 하며 행인을 즐겁게 해줬다. 익살스런 이문세 모창이 특히 기억난다. 입장료 없어 연극도 못 보던 연인들에게는 더 없는 공짜 공연이었다. ▶방송에 진출한 것은 한참 뒤다. 1994년 MBC 공채 5기 개그맨으로 데뷔했다. 몇몇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다할 인기를 끌지 못했다. 결국, 길거리로 돌아왔다. 그의 스탠딩 개그 멘트에 이런 게 있다. “내달부터 인기프로그램 ○○○가 가을 개편합니다. 여러분, 제가 그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싶습니다”. 우스갯소리지만 웃을 수 없는 대목이다. ‘방송에 출연하고 싶다’는 표현이었다. 한국의 방송사들은 그를 끝까지 외면했다. ▶같은 길거리 예능인 윤효상을 만났다. 그 즈음 길거리 공연에 대한 인식도 좋아졌다. 그들의 모습이 인터넷에 오르기 시작했다. 수만건의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청테이프를 붙인 기타, 너덜너덜해진 드럼이 그들의 궁핍한 생활을 대면했다. 그런 속에서도 소년소녀가장과 무의탁 노인들을 도왔다. 이런 멘트도 있다. “한쪽에서 모금 시작하면 반대쪽에서 가십니다. 그래서 양쪽에서 동시에 걷겠습니다”. 모금도 즐겁게 엮어간 개그였다. ▶김철민씨(55)다. 그가 폐암 4기라고 한다. 자신의 SNS에 직접 밝혔다. “오늘 아침 폐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노래하겠다.” 그를 아는 모든 이들이 받은 충격이 크다. 일찍이 TV가 외면한 길거리 스타였다. 어렵고 고됐을 인생이었다. 그러면서도 많은 이들에게 준 게 많다. 웃음을 줬고, 도움을 줬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 왜 하필 그에게 몹쓸 병이 왔을까. 너무 잔인하지 않나. ▶지금도 인터넷에 남아 있는 그의 명언들이 있다. “여러분,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해지는 거래요. 여러분들 지금 힘들고 외롭더라도 그건 잠시입니다. 이 아름다운 세상은 여러분 겁니다.” “여러분, 올해는 하시는 일 다 잘 돼서 여러분 모두가 지겨워 하는 회사 때려치우시기 바랍니다.” “세상엔 황금도 있고 소금도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소중한 건 지금입니다.” 그가 하루빨리 회복해 세상이 공정함을 입증해 보였으면 좋겠다.

김종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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