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오케스트라 안에 숨겨진 배려

후배가 연주하는 어느 작은 오케스트라 공연에서 카운터 테너가 ‘넬라판타지아(Nella Fantasia)’를 아름답고 맛깔스럽게 하는 연주를 들은 기억이 있다. 나는 이 음악을 들으면 대학생 때 봤던 영화가 생각난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영화 <미션(The Mission)> 이 영화에서 신부가 원주민들에게 다가가 강가에 앉아서 오보에를 연주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 들리는 음악이 안니오 모리코네 작곡의 ‘가브리엘의 오보에’, 훗날 이 멜로디에 가사를 붙인 곡이 ‘넬라판타지아’이다. 슬픔에 잠긴 듯 청아한 소리를 내는 악기인 오보에 연주로 원주민의 경계심을 푸는 것으로 설정한 것 같다. 이 설정은 이 영화에 기막힌 오보에의 선율을 탄생시키게 됐고 또한 이 음악 때문에 영화는 유명해졌으며 전 세계 오보에 주자들은 서로 경쟁하듯 ‘가브리엘의 오보에’를 연주하게 된다. 필자가 영화를 통해 장황하게 오보에라는 악기를 소개하는 이유는 오케스트라 안에 숨겨진 ‘배려’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음악회를 가보면 연주를 시작하기 전에 악장이 먼저 나와 기준 음(A)을 어떤 악기에게 불어달라고 지시하고 그 악기가 부는 음에 맞추어 목관ㆍ금관 악기 그리고 현악기 차례로 튜닝을 한다. 이때 기준 음을 불어주는 악기가 바로 오보에다. 오보에가 여러 가지 악기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에서 기준 음을 부는 이유는 이 악기의 음정이 가장 정확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이 오보에는 음정 조절 폭이 좁은 악기다. 왜 오케스트라의 많은 악기가 음정이 쉽게 변하고 음정 조절 폭이 좁은 악기에 음정을 맞춰 조율하는 것일까? 이유는 배려이다. 음정 조절 폭이 좁은 악기에게 조절 폭이 넓은 악기가 음정을 맞추는 일이 훨씬 쉽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려 때문에 음정 조절 폭이 좁은 오보에 주자가 혜택을 받았다. 그렇다면,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할 때는 어느 악기에 맞출까? 이 역시 오보에가 아닌 조율이 힘든 피아노의 기준 음에 온 오케스트라 악기들이 음을 맞춘다. 이것이 오케스트라 연주장에서 흔히 보게 되는 이유 있는 배려다.

오케스트라 연주를 듣고 있으면 현악기, 목관 악기, 금관 악기, 타악기가 함께 어우러져 질서와 조화를 이루며 엮어나가는 음의 스토리가 삶의 축소판과도 같다. 서로 조화와 대비를 이루며 상대 악기를 위해 한쪽 귀를 열어놓고 지휘자와 악보를 번갈아가며 마음으로 대화를 주고받는 오케스트라 단원들! 또 하나의 배려를 통한 따뜻한 세상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오케스트라의 아름다운 선율처럼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며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둥지가 됐으면 좋겠다. 약자를 배려해주고 배려받은 사람들이 노력해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면 더 아름다운 사회가 되지 않을까?

조요한 오산문화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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