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잘한 경찰-잘 못한 경찰

강호순은 부녀자 10명의 목숨을 빼앗았다. 노래방 도우미(3명), 회사원(1명), 주부(1명), 여대생(2명), 공무원(1명) 등이다. 이들 외에도 2명을 살해했는데 장모와 처다. 보험금을 노리고 화재로 위장한 살인이다. 2005년 10월 장모 집에서 일어났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의혹이 많은 화재 현장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단순 실화로 마무리했다. 4년 뒤, 강의 연쇄살인 사건을 수사하던 중 방화로 인한 살인 사건이었음이 드러났다. ▶강을 검거한 것은 경찰이다. 언론이 연일 수사 상황을 썼다. 그러던 중, 장모ㆍ처의 방화 살해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때부터 경찰이 말을 아꼈다. 방화 살인을 확정한 건 검찰 단계에서다. 그즈음 기자가 수사 책임자에게 물었다. “장모ㆍ처 방화 살인 사건이 제대로 처리됐으면 나머지 살인은 막을 수 있지 않았겠는가”. 그의 답변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 식으로 보면, 강호순을 낳은 엄마가 제일 큰 잘못 아니냐.” ▶강 검거는 분명히 쾌거다. 탐문수사와 과학수사의 결실이다. 그런 분위기에서 장모ㆍ처 살인 의혹이 불거졌다. 경찰이 곤혹스러울 수 있다. 기자 질문이 짜증스러울 수 있다. 생생한 건 또 있다. 당시 브리핑 현장이다. 대부분 언론이 이 부분을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갔다. ‘엄마 잘못’을 말한 경찰 책임자는 되레 당당했고, ‘수사 책임’을 물은 기자는 오히려 민망했다. 편집 책임자던 내게 남은 불쾌한 강호순 추억이다. ▶화성 연쇄 살인 사건에서 그 기억이 얼비친다. 단군 이래 최악의 미제라던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이 특정됐다. 30년 전 천 조각에서 찾아낸 ‘DNA 증거’다. 수사 역사에 길이 남을 쾌거다. 반면 다른 상황도 있다. 30년 전 수사팀의 책임이 얘기된다. 용의자 이춘재를 잡을 수도 있었다. 화성에 살던 이가 청주에서 살인했다. 잔악한 성폭행 살인 수법이 화성 사건과 닮았다. 수사팀도 이 부분을 주목했던 듯했다. 그런데 왠지 흐지부지됐다. ▶DNA처럼 첨단 과학 분야도 아니다. 그냥 수사 공조다. 이 당연한 걸 빼먹었다. 수사 과정의 명백한 실수다-이춘재를 수사한 기록이 나왔다고 하니, 자세한 판단은 다시 살피기로 하고-. 그때 잡았다면 공소시효 특별법도 따질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아쉽다. 잘한 것은 잘한 것이고, 못 한 것은 못한 것이다. 30년 만의 범인 특정, 잘한 것이다. 공조 수사 허술ㆍ혈액형 오판, 잘 못한 것이다. 김종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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