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만들고 역사가 잊은 이름 <삼순이-식모, 버스안내양, 여공>

▲ 삼순이

‘순이’는 한국에서 여성을 지칭하는 대명사다. 10여 년 전 인기를 끈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주인공 김삼순 역시 실업자, 노처녀 등의 핀잔과 인생의 크고 작은 고난을 헤쳐나가는 꿋꿋한 여성의 이미지로 그려졌다. 하지만, 이 ‘순할 순(順)’이라는 한자는 지아비와 집안을 잘 따르는 순한 여자가 되기를 바라는 의미로 붙여졌다고 한다.

신간 <삼순이-식모, 버스안내양, 여공>(책과함께刊)은 이 땅의 수많은 순이들, 또 그들의 전성시대를 복원해 조명한다.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우리네 어머니나 언니, 누나, 선배 여성들의 삶이 담겨있다.

일제 강점기부터 1950년대까지 가장 많은 여성이 할 수밖에 없었던 ‘식모’, 하루에 18시간씩, 만원이 되어야만 출발하는 버스 속에서 요금 수납과 안내 등 온갖 일을 도맡아야 했던 ‘버스안내양’, 유신 정권하에서 노동집약적 수출산업을 중점적으로 육성함에 따라 국가적 산업역군이 되어야 했던 ‘여공’ 등등. 입에 풀칠하기 위한 처절함이었고, 타인을 위해 조각조각 부서지는 희생을 기꺼이 무릅쓴 숭고함이었던, 가부장적 관념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 녹록지 않았던 여성과 여성노동자의 삶을 살펴본다.

기자 출신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방대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르포르타주를 완성했다. 당시의 신문 기사나 칼럼, 문학작품, 사진 등을 풍부하게 인용ㆍ수록했다. 저자가 직접 수소문해 인터뷰한 9명의 주인공의 이야기로 더욱 완성도를 높였다. 저자는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담담히 사실적 이야기들만 담아낸다. 현재의 시대를 만든 ‘진짜 주인공’들을 써내려간 글을 마주하다 보면 그래서 더 가슴이 먹먹해진다.

책에 등장하는 ‘순이’들은 시대적 산물이다. 그렇다면, 먹고 살만한 현시대에 순이들은 이제 없는 걸까. 순이들은 역사 속으로 정말 사라졌을까. 저자는 사실 4부로 쓰고 싶었던 이야기가 한 가지 더 있었다고 한다. 한국으로 시집 온 동남아시아 이주 여성들. 저자는 “일관성과 지면의 한계로 다루진 못했지만, 동남아시아 이주 여성들이 현대판 순이”라며 “여성이 더는 ‘순이’가 되지 않는 시대를 꿈꾼다”고 밝혔다. 값 2만 5천 원

정자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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