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어진 아스팔트 길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사이로 희미한 김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광경을 바라보면 신기하기도 하면서 눈이 행복하다. 비 오는 날 나무 아래를 거닐 때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진다. 나뭇잎에 앉아있던 물방울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흐드러져 떨어지는 광경이다. 빗방울이 세지면 나뭇잎은 인내심을 시험받는다. 어느덧 비가 그친 뒤의 나뭇잎은 싱그럽게 물기 가득 입에 물고 터지는 웃음을 참는 듯하다.
참으로 신비로운 자연의 아름다움이다. 사람이 아무리 예쁘게 그려낸다 한들 그 모습이 표현될까? 그 시간! 그 순간에 표출되는 자연미를 눈으로 바라보는 느낌은 황홀하고 가슴 벅찬 행복감이다. 또 비 오는 날 학교 언저리에 펼쳐지는 어린 학생들의 등굣길의 여러 가지 광경들은 한 폭의 수채화 같다. 본인 다리보다 더 크고 무거워 보이는 장화를 신고 살금살금 걸어오는 모습도 예쁘고 비옷 속에 까맣게 눈만 뜨고 시야의 빗방울을 피하듯 눈을 살그머니 감고 오는 모습도 귀엽고, 등에 있는 두툼한 가방이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바람이 약할 때 등굣길은 편해 보이나 멋진 광경을 자아내기는 힘들다. 세찬 바람에는 한쪽으로 모든 것을 연출이 된다. 우산이 한 방향으로 날아가고 때론 뒤집히면서 몸도 한쪽으로 움직여 간다. 몸이 작은 학생들은 우산에 딸려간다. 빗줄기의 방향과 사람이 혼연일체가 되어 멋진 아수라장이 된다. 그 속에서 걸어오는 학생들은 힘든 시간이지만 바라보는 쪽은 아름답게 보인다. 햇볕이 따뜻하고 조용한 날은 자연이 만들어준 특별한 연출도 할 수 없다. 비 오는 날 우산 속의 학생들과 바람과 빗줄기가 한 폭의 수채화를 연출하는데 어찌 그리 아름다울꼬?
요즈음 우산도 개성에 따라 취향이 달라서 우산도 특이하다. 예전에 우리는 좋은 우산이 아니면 자존심도 상하고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혼자 창피함도 느꼈는데, 요즈음 학생들은 뭐든지 당당하다. 투명하여 자신의 모습이 다 드러난 우산을 쓰고 오는 학생들을 보면 용기가 있어 보이고 낭만적으로 보인다. 그리고 우산으로 다른 어떤 개념의 옷도 입혀지지 않는다. 그저 큰 우산을 힘겹게 들고 오든지 자신의 몸에 맞는 우산을 쓰든, 우산도 들 힘이 없이 어려서 비옷을 입고 걸어오든 학생들은 소중한 사람임이 틀림없다. 학교를 향하는 그들의 힘찬 발걸음이 영원히 희망적이고 행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은 마음뿐이다.
정승자 곡반초등학교 교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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