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멀리 서역의 땅,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에는 ‘밀랸판’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나는 얼마 전에 이곳을 방문했다. 오래전에 중국의 이슬람 종교탄압을 피해서 키르기스스탄으로 이주한 중국계 무슬림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마을이다. 이들을 키르기스스탄에서는 둥간족이라고 부른다. 현재 7천여 명이 키르기스스탄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농업을 위주로 생활하는 이들은 자기들끼리 중국어를 사용하고 음식도 중국 음식을 먹으며 자기들만의 정체성과 전통을 간직하면서 살고 있다. 나는 이 사람들로부터 우리의 중화요릿집에서 나오는 깐풍기와 꽃빵을 대접받았다. 맛도 서울에서 먹는 그것과 흡사하다. 이 먼 나라에서 이런 음식을 맛볼 줄이야 꿈에도 생각하지 못해서 한편으로는 놀랍고 신기했다.
키르기스스탄 사람들은 이들 둥간족들이 중국의 이슬람 종교 박해를 피해서 키르기스스탄 땅으로 도망쳐 나오자 이들에게 넓은 땅을 내주었다. 비록 인종과 언어와 문화와 전통이 달랐지만 무슬림이라는 한 가지 이유를 들어 이들을 품어주었다. 지금 키르기스스탄에는 중국의 경제적 진출이 매우 활발하다.
주요 간선도로 건설 등 인프라 구축에서부터 갖가지 상품에 이르기까지 키르기스스탄 경제에 있어서 중국의 입김이 안 미치는 곳이 없을 정도이다. 여기에 둥간족들의 매개체 역할이 두드러진다. 중국어 구사는 물론이고 전통과 문화를 보존하고 있기 때문에 키르기스스탄에 진출하는 중국기업가들에게 있어서 둥간족들은 환상적 파트너로 자리매김 하고 있으며 키르기스스탄 경제에 기여하는데 크게 한몫하고 있다. 그래서 요즘 둥간족들의 몸값은 ‘금값’이다.
국토 면적이 한반도의 80%쯤 되는 키르기스스탄은 인구 630만 명 남짓의 작은 나라이다. 각 인종 간에 다른 점들이 같은 점보다 훨씬 많음에도 이곳에는 40여 민족이 서로 어울려 서로 인정하고 각자의 개성을 존중해주면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다. ‘한 가지만 닮았어도 나의 이웃이요 벗’이라는 사회적 너그러움이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조국 사태’를 멀리 떨어져 있는 이곳 키르기스스탄에서 지켜보면서 열 가지 가운데 한 가지만 달라도 각자의 진영으로 나뉘어서 흡사 아귀처럼 서로 다투는 모습에 부끄러움과 참담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사태를 이 지경에 이르게 한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 세력들의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점을 말해주고 싶다. 나는 독립운동가요 민족주의자 장준하 선생을 존경하는 사람이다. 이분이 살아생전에 하신 말씀이 있다. ‘못난 조상이 되지 말자.’
장준영 전 경기신용보증재단 상임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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