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뒤척이는 오래된 골목 어귀로
재개발 전단지만 헤진 벽 기우는 밤,
충혈된 가로등 불빛 찬바람에 출렁인다
아버지는 달팽이관처럼 등짝 웅크린 채
소리 없는 방에서 주파수를 맞춘다
듬성듬성 빈틈을 보이는 정수리 위로
반질하게 새어 나온 하얀 안테나들
허공에 온기 없는 숨들이 공명하자
축축한 꿈결 그 위로 바람이 분다
일자리가 없는 날들을 새기듯
누런 벽지에 촘촘히 돋는 곰팡이들
씨실과 날실이 어긋난 달력에는
너덜너덜해진 날짜들만 건져지고
껍데기 같은 집 한 채에 한숨들은
방바닥 여기저기 점액질처럼
자꾸만 들러붙는다
고장 난 보일러 배관 이따금씩
쇠쇠 차가운 목울대 세우고 우는 밤
아버지가 다시 둥글게 몸을 웅크린다
아버지가 주파수를 맞춘다
더듬이 번뜩이는 아버지의 정수리
그 꼭대기마다 파동처럼 바람이 분다
천천히 안테나가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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