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장형사’ '심형사`의 참회 또는 설명

진솔한 참회엔 공소시효 없어
진실 폭 좁혀가는 강압수사설
침묵하는 ‘형사’ 입장 밝혀야

비난이 쏟아질 수 있다. 살인범을 두둔한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위헌은 위헌이다. 대단한 식견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학교 시절 달달 외웠던 대원칙이 그렇다. 법률 불소급이라고 했다. 이춘재의 공소시효는 2006년에 끝났다. 뒤집으면 헌법 위반이다. 5ㆍ18 특별법이 전례(前例)라는 건 틀린 소리다. 5ㆍ18 특별법은 ‘성공한 쿠데타의 공소시효’를 따진 입법이다. 화나지만 이런 게 법이다. 이춘재는 법정에 서지 않을 것 같다.

혹, 특별법이 돼도 시원한 결말은 없다. 이미 20년 넘게 감옥에 있었다. 세상에 나올 가능성이 없다. 무기징역은 우리 법의 극형이다. 사형선고는 그저 선언일 뿐이다. 20명 죽인 유영철, 10명 죽인 강호순, 토막 살인범 오원춘도 다 살아 있다. 이춘재 특별법이란 게 내놓을 결론이라야 이거다. ‘집행되지 않는 사형선고’이고, ‘무기징역과 차이 없는 사형선고’다. 그래서 민심은 화난다. ‘살인죄 값을 치르게 할 수는 없겠냐’고 묻는다.

마지막에 참회가 남는다. 교도소에서라도 무릎 꿇릴 필요가 있다. 2012년 미국에서 사형수가 처형됐다. 22년간 수감됐던 도널드 묄러(60)다. 아홉 살 소녀를 성폭행한 뒤 살해한 죄수다. 사형 집행 현장을 소녀의 어머니(50)가 지켜봤다. 창 너머 그녀를 본 묄러가 말한다. “저 사람은 내 팬클럽인가요?” 범죄보다 공포스런 마지막 아닌가. 이춘재를 묄러처럼 보내서야 되겠나. 참회를 시켜야 한다. 유족 앞에 엎드리게라도 해야 한다.

일단, 자백은 순순히 하는듯하다.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도 경찰의 전언일 뿐이다. 범인 특정 두 달, 그는 경찰 손에만 있다. 경찰이 전하는 정보가 전부다. ‘눈빛 하나 변하지 않고 담담히 범행을 설명하고 있는 살인마 이춘재’-이 모습이 경찰 설명으로 그려지는 이춘재다. 그 속 어디에도 참회는 없다. 말 안 되는 특별법 분노는 그래서 나온다. 그런데 이런 이춘재에게 ‘고맙다’고 한 사람이 있다. 윤모씨(52).

화성 8차 사건의 범인이다. 적어도 법률적으로는 지금까지 그렇다. 그가 기자들 앞에서 말했다. “이춘재가 자백하지 않았으면 내 사건은 묻혔을 것이다. 솔직히 이춘재에게 고맙다고 생각한다”. 그런 윤씨가 경찰에겐 분노한다. 쪼그려 뛰기를 시켰다고 한다. 많이 맞았다고 한다. 잠도 안 재웠다고 한다. ‘너 하나쯤 죽어도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고 한다. 젊음을 모두 감옥에서 보낸 윤씨다. ‘이춘재 고맙다’가 이해되고도 남는다.

이쯤되니 생각나는 또 다른 참회(또는 설명)가 있다. 윤씨가 지목한 ‘장형사’ ‘최형사’ ‘심형사’다. 이춘재 자백 직후에는 당시 형사들의 해명이 있었다. ‘정액 검사까지 나왔는데 무슨 강압수사냐’고 했고, ‘범죄자의 영웅심리일 뿐’이라고 했다. 그러다가 없어졌다. 이제 아무 말도 없다. 이춘재가 결정적 진술-피해자 시신의 특별한 흔적-을 했다고 해도, 경찰이 심정을 굳혀가고 있다고 해도 아무 해명이 없다. 아마도 계속 침묵할 듯 하다.

뭔 소리라도 좀 듣고싶다. 윤씨는 소아마비 장애인이다.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다. 그가 ‘담을 넘어가 13세 소녀를 강간하고 죽인 범인’이 됐다. 지금 그 수사의 잘못이 불거졌다. ‘내가 죽였다’는 자백이 나왔다. 이쯤되면 형사들이 말해야 한다. 억울하면 설명해야 하고, 사실이면 참회해야 한다. 어차피 이 수사도 공소시효는 끝났다. 처벌도, 징계도 받지 않는다. 오로지 참회 또는 설명만 남았다. 이춘재가 그런 것처럼….

‘영화’ 살인의 추억은 결론을 내지 않았다. 관객 상상에 모든 걸 맡겼다. 하지만 ‘재심’ 화성 8차 사건은 결론이 날 것이다. 판사가 결정문으로 읽을 것이다. 그 과정도 곧 시작될 것이다. 이춘재가 얼굴을 드러낼 것이고, 범행 현장이 설명될 것이고, 그만의 ‘증거’가 발표될 것이다. 때론 언론이, 때론 법정이 세상을 향해 그 진실을 중계할 것이다. 그래서 생존해 있는 ‘장형사’ ‘심형사’에게 남아있는 고백의 시간이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主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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