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 온신초 동문들, 역사 바로 세우기 나서

▲ 1938년 3월16일자 동아일보에 개제된 평명현(平明鉉) 씨의 온신초 교사(校舍) 건축비 1천 원(圓) 기부 기사. 광명문화원 제공

일제 강점기 민족선각자들의 기부로 세워진 광명시 온신초등학교의 건립과정이 광명문화원과 지역 주민들의 연구·발굴 과정을 통해 상세하게 밝혀져 눈길을 끌고 있다.

온신초 동문을 중심으로 한 지역주민들은 지난 2016년 온신초 부지가 일제 때 민족지사 3인의 기부에 의해 조성됐다는 사실을 밝혀낸 데 이어 이번에는 온신초 교사(校舍) 건축비 또한 지역 독지가의 거액 기부로 충당됐음을 보여주는 기록물을 확보, 10일 본지에 제보했다.

지난 1938년 3월15일 조선일보, 3월16일 동아일보 및 매일신보에 따르면 당시 서면 하안리 주민 평명현(平明鉉) 씨가 1천 원(圓)을 온신초 교사(校舍) 건축비로 기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동아일보는 이런 사실을 평 씨의 사진과 함께 3단 기사로 크게 보도했다.

그러나 평명현 씨는 이처럼 가장 많은 기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온신초 교정에 세워진 기부자 기념비 명단에는 기록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더욱이 기념비 명단 중에는 오히려 온신초에 부지를 판매한 인물이 기부자로 기록돼 있는 등 왜곡된 역사가 방치되고 있어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지역사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주민들의 발굴자료에 따르면 온신초는 1934년 경기 시흥군 서면(현재 광명시)의 유일 교육기관이던 서면보통학교(현 서면초)의 부설 노온사 간이학교로 출발했으나 열악한 시설로 고통 받던 차에 평명현 씨가 교사 건축비를 내고, 노온사리 361-2번지(현 온신초 위치) 일원 토지 소유주 3명이 땅을 기부함으로써 비로소 제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새 부지에 새 교사가 완공됨에 따라 1943년 정식 분교인가를 받고, 1947년 온신초로 승격돼 오늘에 이르렀다.

당시 동아일보와 매일신보에는 ▲경성부 죽첨정 이순환(전 1016평, 시가 730원) ▲경성부 중학정 이숙현(전 703평, 시가 500원) ▲서면 노온사리 강기석(전 989평, 시가 800원) 등 부지 기부의사를 밝힌 독지가 명단도 게재됐다.

이들 3명의 명단은 2016년 당시 온신초 총동문회장이던 윤승모 씨(광명전통문화보존회 사무처장)이 일제 때 등기부등본(폐쇄등기부) 등을 조사해 밝혀낸 기부자 명단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또한 1938년 당시 신문에는 이들 3명 외에 ‘김석봉(서면 노온사리 434번지)’이라는 또 한 명의 토지 기부자의 이름이 나열돼 있다.

그러나 각종 기록을 확인 대조한 결과 김석봉 씨의 기부 약속은 실제로는 이행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온신초 부지에는 일제 때 3인의 기부 토지 외에 1965년 김영택(407평) 정충모(896평) 씨로부터 매입한 토지도 포함돼 있는데, 이 중 김영택 씨는 김석봉 씨의 아들이며 학교 측에 매도한 땅도 1950년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토지 기부에 따른 등기부 정리가 늦어진 상태에서 해당 토지가 후대로 상속됐고, 학교 당국은 뒤늦게 이를 매수해 부지에 편입시킨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광명시 교육계에서는 평명현 씨의 현금 기부 사실이 새로 밝혀진 만큼 교육당국은 물론 시 차원에서도 확실한 역사조명이 필요하다며 민족선각자들을 기리는 것과 함께 이같은 역사를 발굴해 낸 사람의 노력도 정당하게 평가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교육계 한 관계자는 “일제 때 민족 선각자의 기부로 학교가 건립된 것은 광명시에서 유일한 사례일 뿐더러 경기도 전체에서도 드문 일”이라며 “민족 독립운동이라는 관점에서 광명시 차원에서 온신초 사례를 공식 역사로 기록하고 현창(顯彰)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온신초 건립 기부자들 중 평명현 강기석 씨의 후손은 줄곧 지역을 지키고 있어 이번 역사발굴의 의미를 더욱 뜻깊게 하고 있다.

평 씨의 고향은 현 하안2동 밤일마을로, 이 마을은 행정구역상 하안동이지만 노온사동과 접경이어서 1970년대까지도 온신초 학군에 속했다. 그의 손자 효근 효성 씨가 각각 온신초 11회 15회 동문으로 작고할 때까지 고향을 지켰다. 강기석 씨의 고향은 현재 온신학교가 위치한 노온사동 2통 능촌 마을이며, 후손들이 인근에서 번성하고 있다. 아들 대 3형제는 모두 고인이 되었고 손자 대 중에서는 온신초 4회 동문인 진근 씨가 지금까지 고향을 지키고 있다. 증손 고손까지 다수가 온신초 동문이다. 1938년 당시 서울(경성부) 거주자인 이순환 이숙현 씨는 개인정보 보호 관계로 후손 발굴작업이 이뤄지지 못했다.

광명=김용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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