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역사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 영국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와 E.H카가 남긴 명언들이다. 그래서 ‘미래는 역사라는 창을 통해서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라는 주장에 공감이 간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고구려ㆍ신라ㆍ백제 3국 통일이 신라에 의해 이뤄지지 않고, 고구려가 3국을 통일했다면, 오늘날 우리는 중국의 동북 3성과 한반도를 아우르는 동아시아의 당당한 대국의 국민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 아닌가?
일제 식민 노예 치욕도 없었을 것이고, 남북 분단과 6.25 동족상잔의 전쟁도 없었을 것이다. 북핵이니, 지소미아니, 방위비 분담이니 아베니…. 이런 문제들로 피곤하게 살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오늘날 한국을 영어로 KOREA로 표기한다.
KOREA는 고려시대 사라센 사람들이 고려를 COREA로 부른 데서 시작된 것이라 한다. 훗날 일제가 알파벳 순서로 볼 때 JAPAN의 J보다 COREA의 C가 먼저 나온다고 해서 C를 K로 바꾸어 버려, KOREA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고구려의 국호가 장수 태왕 이후 고려로 변경된 사실에 주목한다면, 왕건의 고려는 고구려의 고려를 그대로 국호로 사용한 것이기 때문에, 오늘날 KOREA는 고구려(고려)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만약 중국의 동북공정이 기정사실로 된다면 ‘고구려 = 중국’ 이 되고 ‘KOREA(고려) = CHINA(중국)’가 되는 이상한 등식이 등장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대만(TAIWAN)을 국제무대에서 차이니즈 타이완(CHINESE TAIWAN)이라고 부르는 현실 속에서 국제 사회에서 앞으로 고구려 역사가 중국의 역사로 고착화 되어 버린다면, 먼 훗날 한국을 차이니즈 코리아(CHINESE KOREA)로 부르자는 억지 주장이 제기될지도 모른다.
구리시는 남한에서 고구려 유물이 가장 많이 출토된 곳으로, 지난 2000년 구리시를 ‘고구려의 도시’로 선포하고 광개토태왕 동상 및 호태왕비를 건립하고 고구려대장간 마을 등을 조성하여 고구려 역사 지키는 운돌에 외롭게 매진해 왔다. 고구려 유물은 구리시 아차산 외에도 연천, 파주 등에도 산재해 있다. 경기도 차원에서 고구려 역사 지키기 운동에 더 큰 관심이 요청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박영순 前 구리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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