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수원, 그리고 정약용

이호준 정치부 차장 hojun@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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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하면 떠오르는 상징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수원화성’. 또 ‘수원화성’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바로 정조와 바로 이분, ‘다산 정약용(丁若鏞)’이다.

조선을 대표하는 실학자인 정약용은 당초 10년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됐던 수원화성 공사를 28개월 만에 완료했는데, 공사를 초고속으로 완료할 수 있었던 것은 당대의 최첨단 기자재가 도입됐기 때문이다.

특히 정약용이 도입한 ‘거중기’는 현대의 기중기와 같은 용도로, 화성을 건설하는 동안 인력을 아끼고 무거운 물체를 수월하게 다뤄 작업능률을 5배 이상 높였다고 알려졌다. 또 정약용은 수원화성이 다른 성곽과 차별화될 수 있도록 상업적 기능과 군사적 기능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평산성(平山城) 형태를 기본으로 했다. 우리나라 성곽은 전통적으로 평상시에 거주하는 읍성과 전시에 피난처로 삼는 산성을 기능상 분리했는데, 수원화성은 피난처로서의 산성을 따로 두지 않고 평상시에 거주하는 읍성의 방어력을 강화시켰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성곽에서는 보기 드물게 많은 방어시설을 갖추고 망루는 물론 총구멍도 설치해 적의 침입에 대비했다. 이와 함께 정약용은 수원화성을 지으면서 성을 쌓는 방법과 재료까지 자세히 기록(화성성역의궤)으로 남기기도 했다.

이처럼 수원화성과 다산 정약용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이러한 다산 정약용에 대해 17년간 연구ㆍ교육활동을 해온 ‘다산연구소’가 오는 28일 수원시로 이전한다. 그러나 이전을 앞둔 연구소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다.

애초 사무실 이전이 자의가 아닌 후원 중단으로 인한 이전이고, 사무실을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해오던 차에 경기도의 도움으로 옛 경기문화재단 건물에 사무실을 마련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대부분의 후원자가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어 후원자들과의 접근성도 떨어지게 됐다. 이러한 이유로 사무실 이전을 앞두고 일부 직원은 연구소를 떠났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다산연구소 관계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다산 정약용에 대한 수원시의 ‘무관심’이다. 수원화성과 정조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홍보ㆍ연구하는 수원시지만, 정작 수원시 어디에도 다산 정약용에 대한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그 흔한 조형물 하나 없다는 것이 다산연구소 관계자들의 말이다.

다산연구소가 수원시에 새 둥지를 튼다. 이것이 수원에서 다산 정약용이 새롭게 조명되는 계기, 수원화성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이호준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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