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서울 시내 근교에 강의가 있어 차를 가지고 나갔다가 큰 낭패에 빠졌다. 대형 시위대에 휘말려 그야말로 도로 위에서 오도 가지도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결국, 강의 시간이 훌쩍 지나서야 겨우 강의장에 도착했고, 강의가 끝난 후에도 상황은 그대로였다. 그 꽉 막힌 도로와 시위대를 뚫고 돌아갈 생각을 하니 순간 나도 모르게 미간이 크게 찌푸려졌다. 그분들의 구호도 각종 현수막과 둘러맨 태극기도 그저 짜증의 대상일 뿐이었다.
지난 4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에서 뛰는 손흥민 선수가 깊은 백태클로 퇴장을 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손흥민 선수는 경기 내내 손흥민 선수를 괴롭혔던 에버턴의 안드레 고메스에게 백태클을 했고, 고메스 선수는 넘어지며 다른 선수와 부딪혀 발목이 완전히 골절됐다. 결국, 고메스 선수는 수술대에 올랐고, 어쩌면 재활로 남은 시즌을 통째로 날려버릴지도 모른다.
본인의 태클로 상대방의 발목이 으스러지는 광경을 눈앞에서 지켜본 본 손흥민 선수. 이후 손 선수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통곡에 가까운 눈물을 쏟아내며 경기장을 떠났다. 한 선수를 망쳐버릴 수도 있다는 죄책감에 고개를 떨구고 끊임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이 광경을 보며 다친 고메스 선수도 걱정되었지만, 다치게 만들어 끔찍한 정신적 충격을 입은 손흥민 선수가 크게 걱정되었다. 그날의 일이 트라우마로 남아 두고두고 발목을 잡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놀라운 일은 경기 이후였다. 손흥민을 향한 경기장 안팎의 반응은 예상과는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그것은 비난이 아닌 위로였고, 힐난이 아닌 두둔이었다. 상대팀의 팬들조차 손흥민을 비난하지 않았다. 이의 신청도 받아들여져 3경기 출장 정지 역시 풀리게 되었다. 그리고 이에 보답이나 하듯 손흥민 선수는 지난 경기에서 1골 1도움으로 최고의 경기를 선보이며 팀의 새 감독에게 승리를 선물했다. 트라우마는 그저 기우에 불과했다. 멋지게 극복해낸 것이다.
손흥민 선수의 경기를 보며 서울 한복판에서 느꼈던 그 감정이 묘하게 교차 되었다. 시위대가 시위의 대상에게 느끼는 감정과 내가 그들에게 느끼는 감정은 아마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짜증과 분노. 비난과 증오. 나와 다름을 용납하지 못하는 왜곡된 엄격함. 광장에 꽉 찬 비난의 소리 만큼에 꼭 반비례한 관용의 부재가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의 민낯이 되었다. 손을 내밀기보단 그 손을 겨눠 손가락질하는 곳이 우리 사회가 되었다.
우리 사회가 극한 대립에 치닫는 요즘, 손흥민의 눈물과 이를 보듬어주는 축구 팬들로부터 큰 울림을 느낀다. 용서하고 위로해주었기에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때, 비로소 다시 달리 수 있다. 손흥민과 시위대의 상반된 모습에서 우리 사회의 아픔과 희망을 동시에 발견해 본다.
박성희 한국외대 국제스포츠레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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