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화성연쇄살인사건’이 아니다

화성, 수원, 청주가 다 범행지역
오원춘·우순경 實名도 공판 前
‘이춘재 연쇄 살인 사건’ 불러야

“‘화성연쇄살인 사건’을 ‘이춘재 살인 사건’으로 변경하라.” 섬뜩한 ‘살인’이 등장한다. 화성시의회의 결의문이다. ‘화성연쇄살인사건’에서 ‘화성’을 빼달라는 호소다. 오죽했으면 이럴까. 벌써 30년째다. 사건 발생으로 20년, 영화 개봉으로 10년 당했다. 용의자가 나왔으니 얼마나 더 당해야 할지 모른다. 군(郡) 시절 사건이다. 논밭은 아파트로 변했다. 20만 인구는 80만이 됐다. 그런데도 여전히 ‘화성연쇄살인사건’이다.

명칭 교체가 어렵다고들 한다. 이춘재의 형소법상 지위는 용의자다. 법률적으로는 무죄 추정이다. 경찰도 이춘재 신상을 밝힌 적이 없다. 여기에 공소시효까지 만료됐다. 이춘재가 유죄 될 가능성도 없다. ‘이모씨 살인 사건’이라는 절충안은 그래서 나온다. 따지고 보면 말장난이다. ‘이춘재’가 안 되면 ‘이모씨’도 안 되는 거다. 경찰도 고민은 하고 있다. 쉽게 결론을 못 낸다. ‘화성연쇄살인’으로 계속 갈지도 모른다.

과연 그런가. 바꾸면 안 되나. 이춘재 등장까지는 맞는 표현이었다. 화성 살인 10건만의 명칭이었다. 30년만에 이춘재가 등장했다. 살인 14건을 자백했다. 수원 2건, 청주 2건이 새로 더해졌다. 경찰도 신빙성을 두고 있다. 그랬으면 그때-자백이 발표된 10월 초-부터 사건명(名)은 바뀌었어야 했다. ‘화성ㆍ수원ㆍ청주 살인 사건’으로 쓰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었다. 그걸 안 바꾸고 ‘화성’만 썼다. 오기(誤記)다. 오보(誤報)다.

‘수사 중’이라는 것도 그렇다. 자꾸 14건만 말한다. 아니다. 15건이다. 1건은 밝혀졌다. 처제 살해다. 법원에서 무기 징역까지 확정됐다. 나머지 14건은 여죄(餘罪)다. 계속 밝혀가는 중이다. 연쇄살인의 속성은 연속성이다. 15건 전체를 함께 봐야 한다. 이춘재 연쇄살인의 ‘일부’는 확정된 것이다. 공판을 통해 완벽히 입증된 것이다. ‘미확정’은 처제 살해를 제해놓고 따지니까 나오는 소리다. ‘이춘재’로 씀이 맞다.

‘공소시효 만료’도 그렇다. 1982년 희대의 살인 사건이 났다. 62명을 살해한 우범곤이다. 우씨는 현장에서 자살했다. 공소권 없는 사건이었다. 그래도 사건명은 ‘우순경 사건’이다. 경찰 직급까지 자세히 붙여 쓴다. 2012년 수원에서 살인 사건이 났다. 초기에는 ‘수원토막살인사건’이었다. 수원시가 정정을 요구했다. 곧바로 ‘오원춘 살인 사건’으로 바뀌었다. 역시 공판 제기 전이었다. 형법사(史)에 기록된 사례들은 많다.

경찰도 고민 중이라고 들린다. 변경을 위해 노력 중이라고 한다. 이춘재 신상 공개를 전제로 보는 듯하다. 합법적인 절차를 찾자는 거다. 맞는 소리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어나게 될 화성시 피해가 걱정이다. 유튜브가 뭔가. 국경 없이 세계인이 보는 공간이다. 그 속에서 화성은 살인의 도시다. ‘화성연쇄살인’ 영상으로 도배됐다. 몇십 건인지, 몇백 건인지 셀 수도 없다. 영상마다 몇만, 또는 몇십만씩 조회되고 있다.

정말 힘든 게 지역 이미지 높이기다. 시간 들고, 돈 든다. 화성시가 3월에 유튜브 하나를 올렸다. ‘2019 화성시 현황 홍보 영상’이다. 얼마나 봤을까. 8개월 된 오늘까지 7천837뷰다. 한 명 한 명 힘겹게 늘려간다. 이런 노력이 한 방에 무너졌다. ‘화성연쇄살인사건 범인 특정’ 발표였다. ‘살기 좋은 화성’ 조회 수의 수만 배가 ‘연쇄살인 화성’에 몰렸다. 이춘재가 곧 재심에 나올듯하다. 매정한 유튜브질은 또 시작될 것이다.

‘화성연쇄살인사건’-토론이 필요없는 명칭이다. 절대 쓰면 안 된다. 명백한 오기고 오보다. 굳이 쓰려면 ‘수원ㆍ청주’도 붙여야 한다. 하지만, 그럴 수도 없다. 피해자가 또 생긴다. 수원시민과 청주시민이다. 지명권(地名權)이란 게 이런 것이다. 결국 남는 건 ‘이춘재 연쇄 살인 사건’이다. 경찰이 빨리 결론 내줘야 한다. 화성시의회는 시민의 청(請)을 넣을 곳으로 경찰을 택했다. 아마 경찰 외엔 부탁할 데가 안 보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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