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논란에 날아간 경기도
결국 ‘영남 대통령•호남 총리’
경기도 표심, 계속 당할 건가
‘대통령 경제 철학과의 차이.’ 상당히 고급진 말이다. 이런 각료 기준이 논의된 적 있었나. 하나같이 지저분한 화두였다. ‘재산 불리려고 투기를 했다’ ‘애들 학군 때문에 위장전입을 했다’ ‘자녀 입학용 공문서를 위조했다’…뭐 대충 이런 것들이었다. 김진표 총리 임명 정국에 ‘경제 철학’이 등장했다. 내용도 법인세 인상ㆍ종교인 과세였다. 철저히 정책적 판단의 영역이다. 그래서 고급져 보였다. 바람직한 논란으로 보였다.
의심스럽긴 했다. 고급진 논쟁이 왠지 껍데기일 거 같았다. 고급지지 않은 결론이 기다릴 거 같았다. 그랬다. 경기도 김진표 의원은 날아갔다. 전북이 고향인 정세균 의원이 지명됐다. 지긋지긋한 지역론이다. 영남 정권의 호남ㆍ충청 총리론이다. 여기에 경기도는 없다. 인천도 없다. 호남ㆍ충청만 따지는 균형론이다. 두 지역을 챙기면 지역 탕평의 완성이라고 한다. 호남 총리 지명을 놓고 그렇게들 푼다. 다 통과된 분위기다.
알고는 있었다. 지역은 이미 그렇게 가고 있었다. ‘김진표’ 전까지 전북 언론이다. ‘전북 몫 찾기 언제 가능할까’(10월 15일 J일보). ‘개각 때마다 전북 인사는 들러리’(12월 2일 또 다른 J일보). 철학ㆍ정책은 없다. 오로지 ‘호남 몫’에서 세분화된 ‘전북 몫’ 얘기다. 오늘 정 의원이 지명됐다. 당장 바뀌었다. ‘정 전 의장이 전북 출신이라는 점에서 부산 출신의 문 재인 대통령과 지역적 균형을 맞출 수 있다.’ 합리적이라는 평이다.
그럼 경기도는 뭔가. 대한민국 정부 71년이다. 45명의 총리가 있었다. 경기도 출신은 4명이다. 변영태(부천ㆍ1954년), 남덕우(광주ㆍ1980년), 이홍구(고양ㆍ1994년), 이한동(포천ㆍ2000년)이다. 이한동은 DJP연합 몫이었다. 대통령이 임명한 총리는 1994년이 끝이다. 그 후 25년 동안 없었다. 인구가 1천300만인 경기도다. 산업의 25%가 있다. 이런 경기도가 이렇다. 인천은 더 하다. 전북 인구의 1.6배가 넘는데 한 명도 없다.
애초부터 이럴 거 아니었나. 철학이라는 고급진 논쟁은 그냥 해 본 것 아닌가. 여차하면 지역론으로 갈 거 아니었나. 1주일 전 구문(舊文)에 내가 썼다. ‘…우려스러운 게 있다. 이런 논쟁 사이로 비집는 지역주의다…혹 이런 분위기가 순수한 반대론에 올라타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된다. 없지 않을 것이다’(경기일보 12월 5일자 사설). 그리고 그렇게 됐다. ‘경제 철학’ 논쟁은 사치스런 담론이었다. 결국, 영호남 지역론이다.
경기도에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경기도 인재(人才) 부재론이다. 이 게 더 속상하다. 정세균 의원에 붙는 세평(世評)이 있다. 관록, 포용력, 경제감이다. 6선, 국회의장, 쌍용그룹 상무이사 경력이다. 그거 있는 정치인, 경기도에도 많다. 6선도 있고, 국회의장도 있고, 창업 신화 주인공도 있다. 원혜영 의원(부천 오정) 등이 그래서 기대됐었다. 다 헛물이었다. 정 의원으로 갔다. 관록, 포용력, 경제감을 넘는 기준, ‘호남 몫’이었다.
진보진영이 김진표를 반대했다. 참여연대도, 경실련도 반대했다. 민주노총도 반대했다. 반대 성명 어디에도 ‘지역’은 없었다. 경제 철학에 대한 논쟁만 있었다. 하지만, 결과가 이렇게 됐다. ‘영남 대통령ㆍ호남 총리’를 만들었다. 진보 단체의 노림수는 아니었을 게다. 그러나 진보 단체가 만든 결과임은 틀림없다. 그래서 많은-모두는 아니지만- 경기도민이 실망한다. 김진표 원혜영이 아니라 사라진 ‘경기 총리의 꿈’을 서운해한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驅逐)할 때가 있다. 그러면 안 되는 데, 많은 경우에 그런다. 우리 정치다. 정치가 지역주의에 매달린다. 그러니 유권자들도 지역정치에 매달린다. 표로 협상하고, 표로 겁박한다. 그래도 경기도민은 덜 했다. 정치 변방임을 되레 멋으로 여겼다. 그런데 아닌 것 같다. 어제오늘 보니 아닌 것 같다. ‘총리 주면 표 주겠다’고 협상해 볼 걸 그랬다. ‘총리 안 주면 표 안 주겠다’고 겁박해 볼 걸 그랬다.
하기야, 그래봤댔자 경기도에 곁 한 번 줄 대한민국 지역 정치는 아니지만….
主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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