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아침] 날선 곡선

훈데르트바서의 집은 굽이치는 물결이다

그의 집으로 가는 길은

한 굽이 돌 때마다 바람이 일고

한 고비 쉴 때마다 풀냄새가 짙어졌다

아무것도 꿈꾸지 않았던 나는

우주 밖으로 이어진 훈데르트바서의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푸른곰팡이에 녹색 이끼를 입히면서

눈물에도 색깔이 있다는 걸 말하고 싶어졌고

수많은 창으로 이어진 소박한 거짓말에도

적의를 가져야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그 동안 너무도 많이 버려졌으므로,

황사 먼지에 가려져 꽃 피울 수 없는 날들을 생각하며 나는 울었다

나무 그늘로 차고 넘치던 물의 기원을

이젠 먼 날의 전설쯤으로 기록해야 할까

훈데르트바서의 초록 물방울들이 그늘을 향해 뛰어 오른다

끝은 보이지 않았지만

계단 사이사이 그가 심어놓은 뿌리에선 막 새잎이 돋아나고 있었다

숨죽인 불꽃들이 푸르지 못했던 잠에서 깨어난 듯

뿌리를 뻗어왔다

날선 곡선들이 서서히 나를 감고 휘어졌다

김창희

강원 평창 출생, 동국대 문예대학원 졸업. 1999년『시대문학』시 등단. 국제펜한국본부 이사, 한국동화스피치협회 부회장. 문학아카데미시인회 고문, 한국시인협회 회원, 한국경기시인협회 이사, 문학아카데미회장 역임. 시집 <짧게 혹은 길게> 외 한국시문학상, 숲속시인상, 한국동화구연가 대상, 수용문학상(평론), 한국시학상 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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