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들에게만 시식가가 있던 게 아니다. ‘아돌프 히틀러’ 에게도 비밀리에 운영했던 시식가들이 있었다. 히틀러의 시식가이자 유일한 생존자였던, 실존인물 ‘마고 뵐크’의 고백을 바탕으로 한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문예출판사刊)이 국내에 출판됐다.
식탁 위 향긋한 냄새를 풍기는 산해진미들. 식탁에 앉은 여성들 앞엔 진귀한 음식이 담긴 접시가 하나씩 놓여 있다. 그러나 식당 안엔 극도의 긴장감만 돈다. 누구도 식기를 들지 않고 음식을 바라만 본다. 이내 그녀들의 뒤를 지키고 있던 군인들이 식사를 종용하고, 그제야 억지로 음식을 떠먹는 여성들과 비워져 가는 접시의 음식들. 침묵의 식사가 끝나고, 여성들은 그대로 공포의 한 시간을 견뎌내야 한다. 생과 사를 가르는 60분이 지나야만 자유의 몸이 될 수 있다.
시식에 이용된 여성들은 아리아 혈통의 여성들이었다. 남편들은 전쟁에 차출돼 생사 여부도 모르는 상황에서 날마다 독살감별사로 살아야 했다. 역시나 전쟁의 광풍 속 또 다른 피해자들이었다. 책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실존 인물 마고 뵐크는 70년간 비밀로 간직했던 이야기를 공개하면서 식사 후에는 살았다는 기쁨에 ‘개처럼’ 울어야 했다고 말했다.
마고 뵐크는 전쟁이 끝난 후 평화를 얻지도 못했다. 같이 히틀러의 음식을 감식했던 여자들은 모두 처형당했고, 그녀는 독일 장교의 도움으로 유일한 생존자가 됐지만, 소련군에게 잡혀 14일간 성폭행을 당했다.
히틀러가 시킨 일을 하면 음식을 먹다 죽고, 히틀러를 추종해도 전쟁 종결 후엔 나치 추종자란 명목으로 죽어야 한다. 히틀러에 반대하면 그 역시 죽음뿐이다.
책엔 두 가지의 평범함과 하나의 악이 등장한다. 하나는 시대의 격류에 쓸려가는 힘없는 인간의 평범함, 다른 하나는 한나 아렌트가 나치 전범인 아이히만에게서 발견한 악의 평범성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악’이라 부르기 충분한 일을 스스로 자행하는 이들이 있다. 시대의 격류에 휩쓸리며 자신의 생존을 결정할 수 없는 개인은 존엄성을 지킬 수 있었을까. 책은 힘없이 평범하게 사는 것이 죄가 되는 광기의 시대에 어떻게 인간이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지를 묻는다.
공포 속에서도 살고자 하는 인간의 생존 욕구뿐 아니라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까지, 제2차 세계대전의 단면과 이면을 균형 있게 다뤘다. 작가 로셀라 포스토리노는 이 작품으로 지난해 이탈리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캄피엘로 비평가상 외에도 유수의 문학상을 받았다. 값 1만4천800원
정자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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