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우리 엄마가 그랬는데요

우리 선배들이나 내가 다녔던 학창시절이나 지금의 학생들 모두가 실력을 키우겠다고 학교도 다니고, 학원도 다니고, 과외도 다닌다. 학생 대부분이 그렇듯이 밥 먹고 자는 시간 외에는 공부를 한다. 때론 잠자는 시간도 줄여 가면서 공부를 한다. 많이 배우고 더 좋은 학교를 졸업하면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그 상관관계가 일치한다고는 보기 어렵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가장 큰 이유로 필자는 인성 교육의 일관성 문제라고 생각한다. 학교는 사회생활에 필요한 지식이나 기술을 가르치고 바람직한 인성을 갖도록 길러주기 위해 교육을 하고 있으며 인성이 바람직하다는 것은 마음의 바탕이나 사람의 됨됨이 등을 아우르는 성품을 더 훌륭하게 함양시킨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교육과정을 만들 때 교과교육이나 창체 등에 인성교육을 포함해서 실시하고 있다. 학교에서는 일련의 계획적인 과정으로 자녀의 인성에 아주 영향력을 미쳐오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부모님들 대다수가 자녀의 기를 살려야 하고, 칭찬을 많이 듣고 자라야 하고, 다른 사람한테 손해 보는 것은 절대로 안 되고, 양보보다 자신의 이익을 더 추구하도록 교육이 아닌 말! 말! 말을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존경하는 말보다 무시하고 뒤에서 흉을 보는 모습들이 여과 없이 노출된다. 그런 자녀가 학교에 와서 ‘착하고 정직하고 남에게 양보하고 여러 사람이 함께 협력’하면서 잘 지내야 한다고 하는 교육과 일관성이 없는 상황에 놓인다. 어릴 때는 우리 엄마가 그랬는데요! 조금 더 성장해서는 ‘저 사람도 그랬어요!’ 등 아이에서부터 성인이 되어도 자신의 행동을 자신이 책임진다는 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좋은 인성이 실력이 되어 좋은 인성을 가진 사람이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좋은 직장에서 좋은 인성을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 갈 수는 없을까? 깨어 있는 CEO가 많아져서 훌륭한 부모 아래서 좋은 인성을 교육받는 사람들이 채용되는 그런 사회를 꿈꾸어 본다.

인간의 욕망은 자족하지 못하는 경향이 커서 한없이 올라가기를 원하고, 자족할 줄도 모르니 행복하지도 않다. 자신의 능력을 알고 자족할 줄 알게 된다면 그 자리에서 늘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자족은 최선을 다한 자에게 보상하는 한 줄기 시원한 바람 같은 것이다. 자녀들에게 끝이 없는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부모님들 때문에 훌륭한 부모님들이 가려지고 위축된다. 그런 사람들이 공교육을 약화시키고 있으며 이를 방관하는 사회 제도 또한 문제다. 우리는 가정과 학교 그리고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훌륭한 인성 교육을 하도록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 어린아이의 눈에는 세상이 아름답게만 비친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눈에 어른들의 잘못된 모습이 비치지 않기를 바란다.

정승자 곡반초등학교 교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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