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개봉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브레이드 러너>에서 주인공 데커드는 자신의 손으로 은퇴시켜야 할 리플리컨트(Replicant, 복제인간)와 사랑에 빠져 도망쳐버린다. SF 영화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이 작품은 복제인간과의 사랑도 파격적이지만, 일부 영화 팬이 주인공 데커드도 리플리컨트라고 주장해서 주목을 받았다.
2000년 리들리 스콧 감독은 영국의 한 다큐멘터리 방송에서 주인공 데커드가 리플리컨트라고 발표했지만, 이후 데커드를 연기한 헤리슨 포드는 이를 부정했다고 한다. 2017년 후속작 <브레이드 러너 2049>에서 해리슨 포드가 노년의 데커드를 연기했지만, 아직도 논란은 끝나지 않은 듯하다.
데커드에 대한 논란은 관객이 가진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 때문이다. 인간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자기 생각과 일치하는 정보만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시나리오를 수정하고 촬영 장면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허점이 데커드를 인간으로 만들고 리플리컨트로 만든다. 어느 쪽이든 영화의 감동이 크게 변하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관객들의 확증편향은 그 작품을 풍요롭게 만들고 고전의 반열에 올리고 후속작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렇지만, 일생 생활 속에서의 확증편향은 현상 자체를 잘못 이해하고 왜곡할 가능성을 높인다.
‘대량살상 수학무기’로 잘 알려진 캐시 오닐은 인종차별이 신뢰할 수 없는 데이터와 범죄율과 인종의 상관성과 같은 전혀 관련 없는 허위상관(spurious correlation)에 의해서 작동하고 제도적인 불공평 때문에 강화되며, 확증편향에 오염된다고 단언한다. 앞의 3가지는 그 불합리성을 논증하고 제거할 수 있으나 인종차별주의자들의 확증편향을 바로 잡기는 쉽지 않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사랑을 전하는 방식도 변했다. 밤새 고민하며 한 자 한 자 써 내려간 연애편지는 사라지고 짧은 메시지와 동영상과 깜찍한 이모티콘이 사랑을 전하는 세상이지만 사랑의 무게는 변하지 않았다. 이전 시대에 경험했던 방식이 모두 옳다고 고집해서는 안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내 안에 확증편향을 떨쳐버리려면 세상과 소통하고 공감을 해야 한다.
뇌과학자 김대식 교수는 최근 발간한 저서에서 인공지능이 대중화되면 모든 사람이 기계와 사랑을 나누리라 전망했다. 영화가 아니라 얼마 남지 않은 우리의 미래를 말하고 있다.
인간과 기계의 차이가 아니라, 서로 어떻게 소통하고 공감할지를 고민한다면 그 사랑의 무게 또한 변하지 않을 것이다.
손영태 경인지방통계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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