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간 우리 정부는 저출산 대책에 143조 원을 투입했다. 그 결과는 가임여성의 평생 출생아를 뜻하는 합계출산율 0.9명이라는 세계 최저 출산율이다. 작년 10월 기준으로 한국의 인구 자연증가율은 0%를 기록했다. 출생아 수와 사망자 수가 각각 2만5천명 선으로 거의 같았다.
누구나 인구 감소를 걱정하지만 누구도 내 일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출산을 장려하는 수많은 대책들이 결국 돈만 낭비한 꼴이다. 출산 저하의 원인과 대책을 연구하는 전문가와 이를 집행하는 정부 모두 난감한 상황이다. 지금 결혼이란 제도는 남자에게든 여자에게든 타산이 맞지 않은 선택이다. 결혼하더라도 만혼 추세여서 출산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인구 감소와 싸울 것이 아니라 추세를 받아들이고 현실적인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 출산율 저하와 함께 노인 인구 증가도 걱정이다.
2020년 올해는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의 맏형격인 1955년생(71만 명)이 노인에 진입하는 원년이다. 한 해 69만∼92만 명의 베이비 부머가 2028년까지 차곡차곡 노인 세대로 진입한다. 의료비 증가, 건강보험료 인상, 더 내고 덜 받는 국민연금, 노인 빈곤 악화 등등 경제적 어려움이 국민 피부에 직접 와 닿게 된다. 생산가능인구는 갈수록 줄고 경제 활력은 떨어지고 당연히 나라 경제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출산율 저하와 노인 인구 증가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지는 징표다.
빈곤 퇴치에 관한 연구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마이클 크레이머 교수는 한국 경제의 최대 위협은 저출산과 고령화라고 단언한다. 작년 말 방송에서 미혼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한 결과, 저출산의 가장 큰 원인으로 ‘주거비·양육비 부담과 경력단절’을 꼽았다. 그리고 정부의 저출산 타개 정책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65%나 밝혔다. 지난 10년간의 정부 정책이 방향을 잘못 잡았다는 방증이다.
출산율을 높이겠다는 정부의 방향은 현재의 수준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아프리카 몇몇 국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국가의 출산율이 1%대이다. 사망자 수를 감안하면 인구는 줄 수밖에 없다. 1인 가구와 빈집이 늘고 지방재정이 악화되고, 지역 경제가 쇠퇴된다는 전제하에 정책의 프레임을 짜야 한다.
저출산과 고령화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일본은 이미 9년 전부터 인구 감소는 필연적으로 지방의 소멸을 초래한다는 예측을 했다. 초기에는 우리처럼 출산장려금을 늘리고 정착금을 주며 인구 늘리기에 사활을 걸었으나 효과가 없었다. 지역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지자체 프로모션’을 시행한 자치단체만이 성공했다. 전략이 관건임을 보여 준다.
저출산과 고령화 대책에 시간과 돈이 드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방향이 잘못되면 속도는 의미가 없다’는 말처럼 현실에 터를 박고 대통령이 직접 챙겨야 한다. 아직도 대한민국은 대통령이 만기친람(萬機親覽)하는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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