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중후반 발칸 반도는 ‘세계의 화약고’라고 불렸다. 제국주의에 편승한 강대국들의 영토 전쟁이 가장 빈번하게 일어난 지역으로 이 같은 세계의 화약고는 시간이 지나면서 장소를 옮겨갔다. 그렇다면 2020년대를 사는 현대에서 ‘세계의 화약고’는 어디일까? 아마도 중동이 유력한 후보지일 것이다. 미군의 시리아 철수로 심화된 터키ㆍ쿠르드 분쟁, 이란 군부의 실세 솔레이마니 살해로 세계 정세가 들썩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복잡미묘한 중동의 갈등과 서방 세계의 관계가 왜 현재까지 이르렀는지를 고찰하는 소설 <푸른 옷을 입은 소녀>(구픽 刊)가 출간됐다.
이 소설은 허구의 인물들이 실제 역사를 살아가는 과정과 묘사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한다. 지난 1991년 걸프전 당시 이라크 주둔 미군 알우드 홉스와 타임즈 기자 토마스 벤턴이 우연한 만남을 통해 시달리게 된 전쟁 트라우마를 시작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당시 벤턴은 미군 부대 밖 마을로 취재를 나가게 되고 홉스는 곧 공습이 시작된다는 말을 듣고 벤턴을 데리러 부대 밖으로 나온 상황에서 한 소녀가 살해되는 장면을 목격한다. 이로 인해 홉스는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게 되며 벤턴은 모든게 자신의 책임 같다는 생각에 전쟁터를 떠나게 된다. 이들은 22년 후에도 끝나지 않은 중동 전쟁인 시리아 내전에서 다시 마주하게 된다. 자신들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한 소녀가 난민 뉴스에 출연한 걸 보고 막연하게 전장으로 떠난 가운데 지속적인 활동에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아 딜레마에 빠진 NGO 활동가 마르타 스트롬과 함께 새로운 시각으로 전쟁을 바라보고 스스로를 구원하는 과정을 그렸다.
저자인 데릭 B. 밀러는 에드먼드 월쉬 외교대와 제네바 국제연구대학원에서 국가안보와 국제관계 분야 박사 학위를 받고 20여 년이 넘는 기간 동은 UN 군축연구소, 노르웨이 국제문제연구소, 국제문제 정책연구소에서 일해온 인물로 지난 1991년 걸프전 당시 이스라엘에서 공부하던 중 약 40일 동안 이어진 이라크의 미사일 공격을 실제로 목격한 바 있다. 그래서인지 이번 신간은 종전 메시지를 낭만주의적 포장이 아닌 중동의 지속적인 비극을 조명하며 진정한 관심을 촉구하는 형태로 전달한다. 아울러 은유적인 희생자인 푸른 옷을 입은 소녀를 통해 보여 주는 어린 난민들의 절박한 위치와 서방 세계의 수동성을 동시에 들춰내며 불편하면서도 희망을 촉구하는 시선을 선사한다.
이 작품은 지난 2017년 골드 대거 상 최종 후보에 올랐으며 그해 MEOC(중동원조회의) 도서 상을 수상하며 셀프 어웨어니스 선정 최고의 책의 영예를 안았다. 값 1만4천800원
권오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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