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대개 남이 나를 지칭하거나 호칭으로 쓰지만, 자신이 자신에게 불러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홀로 하는 시간이 많은 요즘이다. 한 번쯤 자신의 이름을 가만 불러보면 어떨까. 쑥스럽기도 하지만 만감이 교차하기도 할 것이다. 느낌에 따라 내 삶이 평화로운지 누추한 지도 가늠할 수 있으리라.
역설적이지만 나의 이름은 나의 허상이요 나의 진실이다. 숱한 철학자들이 이름의 허상을 벗어나 사물 본연의 진실을 발견하고자 하였고, 명전자성(名詮自性) 곧 이름은 그 사물의 성질을 나타낸 것이라고 했으니 말이다.
사람의 이름에는 특별한 의미가 더 있다. 세상에 처음 태어나면서 가장 먼저 받은 사랑의 기표가 이름이다. 가족의 깊고 큰 사랑이 상징화되어 내게 주어진 최초의 언어다.
그래서 갓 태어난 아기 작명은 여간 큰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온갖 소망이 담겨 더 어렵다. 오래 잘 살아야 하고, 착하고 건강해야 하고 출세까지 했으면 하는 기원이 깃든다. 어찌 세상에서 맨 처음 받은 사랑이 이름이 아니라 하겠는가?
한 생애를 살다가 부의로 마지막 남기는 기표도 이름이다. 우리는 숱하게 명멸하는 사후 기표를 대하며 산다. 그 사람에 대한 인상과 이미지, 애달픔과 애정의 정도를 지닌다. 이가 역사적으로 특별하면 위인이다. 어찌 세상에서 마지막 남기는 사랑이 이름이 아니라 하겠는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김춘수 시 ‘꽃’은 의미 있는 존재로의 인식을 노래했다.
이색(李穡)은 ‘목은집’에서 “자식은 자기 몸에서 나누어졌음에도 작명하여 그 기쁜 마음을 기록했는데, 하물며 내 몸인 나 자신의 이름과 자를 모두 고쳤으니 나는 다시 처음이 된 것이다.”라고 했다. 이름이 지닌 각별한 의미를 일깨워 주는 대목이다.
코로나19 명칭을 두고 미국과 중국 간의 신경전이나, 총선의 비례대표제를 두고 벌이는 정당 간의 얄팍한 당호들 같은 부정적인 이름의 세상을 잠시 떠나 보자.
오늘은 오직 내 이름의 긍정적인 가치와 사랑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내 이름을 사랑함은 곧 나의 삶을 사랑하는 것이다.
더욱이 사람들이 내 이름을 밝고 긍정적으로 인식한다면 그만큼 내가 가치 있는 삶을 살아온 증거이기 때문이다.
이만식 경동대 온사람교양교육대학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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