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경기신용보증재단 상임감사를 할 때의 일이다. 감사의 일이란 게 주로 사무실에 앉아서 문제점을 발견하여 남 잘못을 지적하고 이를 바로잡는 일이다. 그러다 보면 직원들에게 주의나 징계를 주고 잔소리나 하는 자리이다. 책임질 일은 별로 없고 권한은 막강한 노른자위 꽃보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낙하산으로 내려와서 놀고먹기에는 최적의 자리인 셈이다.
나는 외신기자를 하다가 낙하산으로 내려와서 그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에 사무실에만 앉아서 지내기에는 나의 활동적이고 자유분방한 취향과 성격에 별로 맞지 않았다. 기자 체질인 나는 답답함을 느꼈다. 그래서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현장이란 경기도 사방 천지에 분포되어 있는 소규모 영세공장들이었다. 그곳들을 방문해서 사장님들과 만나 그분들의 인생 역정, 사업 이력 등 미주알고주알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민원을 본부에 전달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이들로부터 누구보다도 빠르고 생생한 정보를 파악하여 이를 재단의 정책에 반영할 수 있었다. 부정부패는 저절로 사라지게 되었다. 왜냐하면, 내 앞에서 공장 사장님들 입을 통해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모르다 보니까 결과적으로 직원들이 나쁜 마음을 갖는다는 것인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김포에서 철관 파이프를 생산 제조하여 수출하는 최 사장님 공장을 방문했다. 이분은 대학 문턱에도 못 가 본 공장 기술자 출신인데 꽤 탄탄하게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 성공 비결을 물어보니 수많은 기업을 도산과 폐업으로 몰아넣었던 1997년 하반기의 IMF 외환 위기가 오히려 그를 한순간에 알부자의 반열에 올려놓았다고 한다. 1달러에 800~900원 하던 환율이 1천500원 안팎으로 치솟아 국내 수입업체들은 비명을 지를 때, 이분과 같은 수출 위주의 회사는 무려 두 배가 넘는 환차익으로 떼돈을 벌어들였다고 한다. 최 사장은 그때 번 돈을 종자돈으로 삼아 주변에 땅을 사서 공장을 확장하고 회사를 반석에 올려놓게 되었다면서 자기 경험담을 말했다. “장 감사님, 위기와 기회는 항상 같이 오더라고요.”
요즘 코로나바이러스19로 인해 환율과 주식시장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패닉 상태로 빠져들면서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전 세계 경제가 요동을 치고 있다. 특히 이 와중에 경기도 소재 우리 중소기업들이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러나 23년 전 IMF 외환 위기의 혹독한 고통을 겪었으면서도 강인한 기업가 정신으로 이를 극복하여 세계 무역대국으로 재도약한 바 있는 대한민국이다. 우리 기업들이 쌓아놓은 내공은 장난이 아니다. 다른 나라 경쟁기업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살아남으면 더 큰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김포 최 사장의 경험은 혼돈의 시기인 요즘에 매우 소중하다. “대한민국 중소기업 사장님 여러분, 궁하면 뚫어야 합니다. 기죽지 말고 힘냅시다!”
장준영 前 경기신용보증재단 상임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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