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도 경험하지 않은 사회, 그리고 새로운 발견

텅빈 거리·2주 단위 개학 연기 불안감 가중
사회적거리 두고 위생 철저외 방법 없어
가족 간 시간 늘면서 새 면역력 생겨나
스스로 돌아 보는 기회로 위기 넘기자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분주한 아침 출근길, 무언가 허전한 느낌이 든다. 챙겨야 할 것을 빠뜨린 느낌마저 들어 애꿎은 주머니와 가방을 살펴본다. 언제부턴가 거리에는 사람들이 부쩍 줄었고 분주히 경기도와 서울을 왕래하는 직행좌석 버스 안에도 승객을 기다리는 자리가 생겼다. 약간은 명절연휴 거리를 연상케 하는 출근길을 지나 종착지인 화양동에 도착하니 텅 빈 캠퍼스의 회색빛은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평소 젊음의 생기로 가득 찬 대학과 대학병원에서 강의와 연구를 하는 나에게는 마치 쓰나미가 쓸고 지나간 듯한 지금의 상황이 단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악몽을 매일 꾸는 듯한 착각을 들게 한다. 연초부터 코로나19 뉴스를 접하면서 이전에 경험했던 사스나 메르스를 떠올리며 또 한바탕 시끄러워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정도의 다소 시니컬 스텐스를 취했던 나로서는 지금의 상황은 여전히 받아들이기가 쉽진 않다. 이제는 모든 것을 집어 삼켜버릴 듯한 괴물이 돼 버린 바이러스는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모든 것들은 마비시켜 버렸다. 매주 미사를 드리러 성당에 가던 것을 중단시켰고, 틈만 나면 모이던 각종 모임도 자취를 감추었으며, 10여년 이상 해왔던 운동도 중단했다.

2003년 결혼 당시 동남아로 신혼여행을 예약해 놓고 꿈같은 시간을 기대했다가 사스 창궐로 여행사 취소통보를 받고 부랴부랴 안전한 일본 패키지로 바꿔 위기를 모면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로부터 10여년 후 중동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한 메르스가 한국에도 전파돼 2015년 한국에 첫 사망자가 나오고 우리 부부 모두 병원에 다닌다는 이유로 초등학교에 다니던 큰애와 유치원에 다니던 둘째 아이까지 등교에 제동이 걸려 어려움을 겪었던 기억도 있다. 그래도 그때는 학교도 다녔고 식당도 갔고 직장도 다녔으며 각종 학회도 열렸다. 하지만 작금의 사태는 지금까지의 것들과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다가온 것 같다. 아이들이 학교를 못 가고 있고 2주 단위로 연기를 거듭하고 있어 불안감은 가중된다. TV에서는 매시간 코로나 전파속도와 사망자 뉴스가 보도되고 있으며, 하루에도 몇 번씩 휴대폰에 날아오는 경고 메시지는 사태의 심각성을 더해가고 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사회적 거리를 두고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고 마스크 착용을 잘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게 없어 보인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밖에 세상은 공동화되고 있지만 내부 가정은 더욱 결속되고 있다는 사실, 그것을 인지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퇴근하면 곧장 집으로 돌아오게 됐고 아이들도 학교나 학원에 갈 수 없으니 집에서 스스로 공부를 해야 했다. 아이들의 학습을 어떻게 봐줘야 하나 곰곰이 생각하던 참에 스마트 가정통신문 e-알리미를 통해 온라인 학습방법을 전달받아 함께 할 수 있게 되니 매우 유용했다. 평소에는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각자의 일에 매몰돼 공사가 다망했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으니 좋든 싫든 함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늘어났다. 평소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이 공부하는 것을 함께 봐주지 못했지만 지금은 온라인 콘텐츠를 함께 보고 이해하며 가정이라는 공간이 학교도 되고 놀이터도 되는 새로운 문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삶 자체가 단순화됐으니 작은 것에도 웃고 떠드는 일이 늘어나고 가족 간의 친밀도가 현저히 증가되는 것을 느끼게 됐다. 이전에는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어 주위를 살펴볼 기회가 없었지만 코로나19 등장으로 본의 아니게 주변을 돌아보게 됐고, 가족 간에 끈끈한 유대감을 통해 역경을 함께 이겨내는 새로운 면역력을 발현하게 된 것이다.

학교는 체계적인 온라인 교육플랫폼이라는 새로운 대안을 찾게 됐고, 교육제도와 행정은 위기상황에 대한 순발력과 대처능력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됐다.

어느 시점이 되면 공동의 노력으로 작금의 바이러스 사태는 종식될 것이며 궁극에는 이러한 역경을 통해 배운 경험으로 우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 것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지금,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위기의 사회를 살고 있다. 하지만 이 위기는 우리에게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며,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의 의미를 재발견하게 하는 모티브가 될 것이다.

이정우 광주 신현중학교 학부모

건국대학교 병원•건국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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