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아침] 다비

희미해진 몸의 촉수를 켠 장작들

위에 가볍게 얹히는 별빛의 무게

봄 흐드러진 사과나무꽃밭 석천사 앞뜰에서

틀어진 세월에 꽃잎을 띄워주시며

나의 서른 살을 배웅해 주셨던 지오 스님

둥글게 잘 익은 사과 한 알로 누워

눈부신 씨앗만이 남겨질 때까지

사라지므로 비로소 존재하는

먹음직스런 역설을 보여주기 위해

함께 돌아갈 길과

먼저 가야 할 길을 잘 포개어

단단히 묶는 어둠이 그의 몸에

불붙인다.

사과 향기 그윽하다.

김명원

충남 천안 출생. 이화여대 약학과 및 성균관대 대학원 국문학과 졸업(문학박사). 1996년 <詩文學>으로 등단. 시집 <슬픔이 익어, 투명한 핏줄이 보일때까지>, <달빛 손가락>, <사랑을 견디다>, <오르골 정원>, 시인 대담집 <시인을 훔치다> 등 출간. 노천명문학상, 시와 시학상, 젊은 시인상, 대전시인협회상, 호서문학상 등 수상. 대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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