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에게서 관찰할 수 있는 질병은 누구에게서나 똑같이 볼 수 있다. 17세기 잉글랜드의 히포크라테스로 불렸던 토머스 시드넘은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질병과 환자를 분리했고 다양한 질병을 분류했다. 의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방법론은 달라졌지만, 질병분류의 전통은 근대를 넘어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다.
국내에서 신종 전염병이 발병함에 따라 통계청은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에 명칭과 코드를 신설했다. 이러한 조치는 세계보건기구(WHO)가 국제적 공중 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한 데 이어 국제질병분류(ICD)에 질병명과 응급 사용 코드를 지정한 선례를 따랐다. 이로써 코로나19는 의료현장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어지게 되었고, 관련 정책수립과 통계작성을 통해 국내외의 협력을 끌어낼 토대가 형성되었다.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이 발병했을 때도 이러한 과정을 거쳤다. 차이가 있다면 국가 차원에서 보건체계를 새롭게 개편한 것이다. 2019년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에서 개발한 세계보건안전지수(GHS Index)를 보면 우리나라는 전 세계 195개국 중 9위를 기록했다. 자료에 따르면 1위는 미국이고 2위는 영국이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미국이나 유럽의 여러 국가처럼 지역봉쇄나 이동 제한도 없었고, 시민들의 공포가 생필품의 사재기로 표출되지 않았다. 현재 미국과 영국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보면 우리나라 보건체계의 우수성에 확신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보건체계는 의료진과 방역 당국의 헌신적인 노력과 함께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한, 팬데믹 상황에서도 잘 정비된 통신망과 정보통신 기술 덕분에 다양한 분야에서 재택근무가 시행되고, 정부의 신속한 대응과 투명한 정보공개 또한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는데 한몫을 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전염병 감염의 우려가 있음에도 21대 총선 사전투표에 1천100만명이 넘는 유권자가 참여했다는 소식은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국민의 한 표는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도구상자인 동시에 민주주의 그 자체이다. 나의 선택이 공동체의 이익에 부합된다고 스스로 믿고 여타의 불이익을 감수하는 용기를 프랑스의 철학자 푸코는 ‘파레시아(parrhesia)’ 라고 불렀다.
이런 용기가 한 번 더 필요하다. 전염병의 발병과 확산으로 힘들어진 이 시기에 정부와 기업과 시민들은 건강, 보건, 교육 그리고 경제 상황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고품질의 통계 생산을 위해서는 기업과 시민들의 협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힘든 시기 모두에게 힘이 될 수 있도록 통계청 직원들이 전화를 드리거나 방문을 하면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드린다.
손영태 경인지방통계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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