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한 장면 같은 순간이었다. 눈을 떴을 때 주변의 여러 대 차량이 필자의 차량을 향해 동시에 경적을 울려대고 있었다. 일상적인 항의와 분노를 표하는 경적소리와는 달리 한 생명과 차량을 구하기 위한 애타는 울림이었다. 약 20년 전의 일임에도 생생하게 기억될 만큼 충격적인 기억이다. 이후 필자는 졸음이 유발되는 경우가 아니라도 감기약을 복용하면 운전대를 잡지 않는 습관이 생겼다.
최근 5년간 봄철 고속도로의 교통사고 사망원인 1위는 ‘졸음·주시태만’ 이었다. 얼마 전에는 시내도로에서도 졸음운전으로 인한 9중 추돌사고가 있었으니, 단순 고속도로에서 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대형 교통사고를 일으키는 주요 원인 중 음주운전은 혈액이나 호흡 등을 측정하여 그 위험성을 미리 예측할 수 있으나, 졸음운전은 위험을 예측할 수 있도록 졸림의 정도를 측정할 수 있는 척도가 없고 현장 단속이 어려울 뿐 아니라 졸음운전임을 입증하기 쉽지 않다.
졸음운전으로 인한 사고현장에서는 일반적으로 교통사고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키드마크(skid-mark)가 발생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는 운전자가 위험 상황에 직면하기 전까지 충돌시점이 임박했음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주는데, 그만큼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충돌하여 부상 정도나 사망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운전자들은 흔히 피로를 느끼면서도 졸음운전을 계속하면서 불확실한 사고 여부를 피하기보다는 시간 단축 효과를 선택한다.
그리고 잘못된 선택이 빚어내는 도로 위의 참사를 막고자 관련기관은 매년 졸음운전과 관련된 자극적인 슬로건을 고민하며 업데이트 시키고 있다.
우리나라의 빨리빨리 문화는 국민총소득(GNI) 1조 7천254억 달러(2018년 통계청 KOSIS기준)에 이르며 세계 183개국 중 10위라는 급격한 경제성장을 불러왔다.
이제 단순히 시간을 단축하고 눈앞에 보이는 시간비용과 경제적 이익을 선택하기보다 나와 주변의 안전을 생각할 수 있는 더 가치 있는 선택을 해야 할 때이다.
김명희 한국교통안전공단 경기남부본부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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