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마다 엮이는 박근혜 유령
집요하고 잔인하게 보수 발목
결별 없이 보수 재건 없을 것
Y는 진보다. 젊은 날을 가열차게 보냈다. 어느덧 중년의 고개를 넘어간다. 여전히 진보를 끌어안고 산다. 난데없이 전화기 너머로 말한다. “(진보가) 너무 크게 이겼다. 이렇게 가면 안 되는데.” 그러면서 주문한다. “(보수 쪽에) 목을 칠 인간들은 쳐내야 한다. 보수를 생각하는 언론이라면 그렇게 써야 한다.” 불쑥 온 전화는 그렇게 끊겼다. 누굴 치라는 건지 말하지 않았다. 선문(禪門)만 던졌다. 졸답(拙答)이라도 쓰려 한다.
지난 넉 달간, 보수의 질문이 있었다. “도대체 여론조사가 맞는 것이냐.” 그럴 만했다. 보수의 눈엔 도대체 이해 못 할 수치였다. 잘 나간다는 한국갤럽의 조사 추이로 보자. 정경심 구속 이후(11월 4주), 38% 대 24%다. 조국 기소 이후(1월 2주), 40% 대 20%다. 코로나19 창궐 이후(2월 4주), 37% 대 21%다. 변화가 없다. 계속 10~21% 차이다. 보수는 믿지 않았다. 믿을 수 없었다. 선거 날이 되면 다 드러날 것이라며 기다렸다.
투표함이 열렸다. 더불어민주당이 180석 얻었다. 미래통합당은 103석 얻었다. 총선사에 예가 없는 압승ㆍ참패다. 어떤 보수는 득표율을 말한다. 49.9% 대 41.5%. 의석수보다는 덜 초라해 보인다. 득표율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며 위로 삼는다. 딱한 일이다. 그래 봤댔자 참패는 참패다. 8.4%포인트 역시 엄청난 차이다. 넉 달간 여론조사가 이랬다. 선거 당일 결과도 그대로 나왔다. 이제는 믿어야 한다. 여론조사는 정확했다.
그 넉 달, 보수는 자신했다. 문재인 정부는 실패라고 봤다. 경제지표치고 빨간불 아닌 게 없다. 여기에 총선 결과를 예고해주는 사건들까지 겹쳤다. 조국 사태, 분명히 국정 농단이었다. 신천지 사태, 분명히 방역 정책 실패였다. 세월호 텐트 막말, 분명히 규명이 필요한 의혹이었다. 그런데도 여론조사는 그대로였다. 민주당은 35% 위에, 통합당은 25% 아래 딱 고정돼 있었다. 그래서 엉터리라고 했다. 참패가 시작된 곳이 바로 여기다.
믿고 싶은 표-보수-만의 시각이었다. 지켜보는 표-중도-의 시각은 달랐다. 조국 사태를 보며 떠올렸다.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국정 농단은 뭐였나.’ 울산시장 선거 개입을 보며 떠올렸다. ‘박근혜 정부의 반박 학살 공천은 뭐였나.’ 신천지 사태를 보며 떠올렸다. ‘박근혜 기증이란 손목시계는 뭔가.’ 차명진 망언을 들으며 떠올렸다. ‘세월호 당일 박근혜 7시간은 밝혀졌나.’ 대추나무 연 걸리듯 뒤섞였다. 이러니 오를 리가 있나.
3월 4일, 보수는 또 한 번 흥분한다. ‘박근혜입니다’로 시작하는 옥중 편지다. 야권에게 뭉치라 주문 했다. 심금을 울린 승부수같았다. 통합당 지지율은 어떻게 변했을까. ‘21%(앞 주)→22%(편지 주)→22%(다음 주)’다. 어떤 변화도 없었다. 되레 민주당 지지율이 올랐다. 36%(편지 주)에서 39%(다음 주)로 높아졌다. ‘박근혜 편지’를 본 중도 3%가 민주당으로 간 거다. 집요하고 잔인하게 잡고 늘어지는 ‘박근혜 족쇄’였다.
이제 보수를 절망케 하는 예상까지 나온다. ‘이번 득표율-49.9% 대 41.5%-이 당분간 못 볼 최고 성적일 수 있다.’ 괜한 소리가 아니다. 증명이 있다. 내놓는 분석이란 게 그거다. 차명진 때문에 졌다고 한다. 코로나 때문에 졌다고 한다. 차명진 이전에도 13% 차이였고, 코로나 창궐 때도 16% 차이였다. 이 수치는 쏙 빼놓고 얘기한다. ‘선거 여왕’의 몰락을 믿지 않으려는 맹신이다. 이를 눈치챈 민주당은 ‘20년 집권’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노무현도 추락했었다. 비리 의혹에 휘말렸다. 진보가 만신창이가 됐다. 그때 노무현이 편지를 썼다. ‘옥중 편지’와 달랐다. 2009년 4월 22일, 이렇게 적고 있다. ‘더 이상 노무현은 여러분의 가치가 아닙니다… 나를 버리십시오.’ 그리고 스스로를 버렸다. 그 후, 진보는 살아났다. 대통령 당선에서 180석 압승까지 이어져 왔다. 세상 다 아는 노무현의 혼(魂)이다. 이 혼의 차이가 이념 역사를 갈라쳤다. 진보 압승과 보수궤멸로.
172년 전 ‘공산당 선언’이 있었다. 그 서문을 베껴 적고 싶다. “하나의 유령이 대한민국 보수를 떠돌고 있다. 박근혜라는 헤어날 수 없는 유령이.”
主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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