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은나라에 상용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가 늙어서 병으로자리에 눕자 노자가 그를 찾아가서 “선생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 교훈을 알려 주십시오.” 그러자 상용이 “높은 나무 밑을 지나가 보면 알 걸세.” 노자가 얼른 다시 물었다. “노인 공경할 것을 이르시는 것이지요?” 이때 상용이 자기 입을 딱 벌리며 말했다. “내 혀가 남아 있느냐?”, “남아 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도 입을 벌린 채 물었다. “내 이가 남아 있느냐?” “없습니다.” 상용이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노자에게 “이제야 알겠느냐?” 물었다. 노자는 “강한 것은 없어지고, 약한 것은 남게 됨을 이르시는 것이지요?” 라고 답했다.
생명의 본성이 무엇일까? 부드러움이다. 강한 이빨은 세월이 가면 다 빠지고 말지만 부드러운 혀는 끝까지 남아 있다. 굳고 강한 것이 성공할 것 같지만 강한 것은 죽음의 무리이기 때문에 곧 사라지게 될 것이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삶의 무리이기 때문에 오래 살아남는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생명의 본성을 깨닫지 못하고 강한 것을 근본으로삼고, 강함을 숭상한다. 그러나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 단단한 것을 이기는 것이 진리다. 사람들은 바위 같은 존재가되기를 바라지만, 노자는 바위가 아닌 물을 찬양한다.불이 위로올라가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면, 물은 부드러운 성질을 지니고 또한 물은 늘 아래로, 낮은곳으로 흐른다. 무엇이든 위로가려 할 때는 경쟁과 질투와 다툼이 생겨난다. 우리가 물과 같은 부드러운 마음을 지니면 다툼이 없는 아름다운 세상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예수도 부드러운 생명이 지닌 신비와힘을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었다. 또한 예수는 약하디 약한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를 하늘나라의 주인공으로 지목했는데, 이것은 그가 부드러움과연약함과 단순성이야말로 생명의 본성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강자가 되려고 애를 쓰고 그래야 성공한다고 착각을 한다. 이렇게 성공한 이들의 특징은 마음이 강팍해지고 굳어진 마음으로, 그 길이 죽음의 길임을 모르고 살아간다. 이렇게 굳어진 마음은 점점 남에게 상처를 주고, 자기 안에 스스로 상처를 만들고, 이런 상처와 고통 때문에 마음의 문을 닫아걸고 점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돌같이 굳어진 채 살아간다. 그러나 행복의 길은 이렇게 굳어진 마음이 아니라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부드러움이 나와 세상을 구원한다. 강함은 멸망의 지름길임을 명심하자.
오늘도 내 입안의 혀를 느껴 보면서 3초 동안 숨을 마시면서 “부드러움”, 3초 동안 숨을 내 쉬면서 “마음의 평화” 말해보자. 부드러움은 내 마음의 평화를 가져 온다. 이렇게 평화는 나로부터 시작한다. 희망도 나로부터 시작한다.
김옥성 교육희망네트워크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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